아산시 이야기를 찾아볼까요?
이 지역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살펴보고 다른 지역 이야기와 비교해 보세요.
아산시 이야기 (12편)

세종대왕을 도운 황룡이 돌아온 회룡리
아산 배방읍 옛 절터에는 하늘에서 잘못을 저질러 쫓겨난 황룡이 살고 있었어요. 황룡은 삼 년 동안 마을을 지키면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지요. 어느 저녁 소나기 속에서 온양온천으로 가던 세종대왕 일행이 길을 잃고 헤매자, 황룡은 농부로 변신해 길을 안내해 주었어요. 그런데 절터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규칙을 어긴 탓에 황룡은 그만 이무기가 되고 말았대요. 훗날 이 사연을 들은 세종대왕은 신하들에게 절을 다시 크게 짓게 했고, 그 덕분에 황룡은 다시 절터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수호신이 돌아왔다고 하여 이곳을 회룡리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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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를 지키던 산지기 마을, 산직촌
아산 도고면에 살던 한 참판 어른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은 좋은 묫자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요. 날이 저물어 쉴 곳을 찾던 중 만난 한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 묵었는데, 꿈속에서 그 노인이 나타나 이 자리를 잘 지켜 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지요. 이튿날 보니 묵었던 집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가 아주 좋은 명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들은 이곳에 아버지를 모시고, 근처에 살던 부부에게 벼슬까지 약속하며 묘를 지켜 달라 부탁했지요. 그 뒤 하나둘 이사 오는 사람이 늘어 마을이 되었고, 산지기가 사는 곳이라 하여 이 마을을 산직촌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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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을 물려받은 학자, 아산 외암마을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는 외암마을이라는 민속마을이 있어요. 조선 후기, 이 마을에는 소를 많이 기르는 부잣집 강씨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재산을 이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물려주라고 말했대요. 처음엔 망설였지만 노인이 세 번이나 나타나 꾸짖자, 강씨는 마을에 살던 총명한 소년 이간을 찾아갔어요. 이간이 남의 재산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하자, 강씨는 재산을 물려준다는 글만 남기고 마을을 떠나 버렸대요. 훗날 이간은 뛰어난 학자가 되어 이 마을에서 학문을 닦았고, 사람들은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을 외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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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이름을 딴 마을, 아산 풍기동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에는 풍기동이라는 마을이 있어요. 백제 시대, 이 마을에는 기득과 풍순이라는 부부가 가난하지만 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며 살았대요. 나라에 전쟁이 나자 기득은 전쟁터로 나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풍순은 홀로 시부모님을 봉양해야 했어요.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던 어느 날, 개가 토해 놓은 보리밥을 씻어 시부모님께 드릴 수밖에 없었는데, 하늘에 용서를 빌자 벼락이 쳐 바위가 깨지며 그 아래에서 황금이 나왔다고 해요. 그 뒤로 걱정 없이 시부모님을 모실 수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 마을을 풍기라 부르게 되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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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효자 이야기가 전하는 마을, 아산 효자리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에는 효자리라는 마을이 있어요. 원래는 마랑동이라 불렸는데, 이곳에 살던 두 효자의 이야기 때문에 이름이 바뀌었대요. 조선 선조 무렵, 박창신이라는 사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매일 험한 고개를 넘어 산소를 찾아갔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등에 태워 데려다주었다고 해요. 또 조선 말에는 최익대라는 아이가 병든 어머니를 위해 한겨울에 잉어를 구하려 애쓰다가, 꿈에서 신령이 알려 준 대로 집 앞 연못에서 잉어를 잡아 어머니 병을 낫게 했대요. 나라에서도 이 효성을 칭찬하며 상을 내렸고, 마을 이름은 효자리로 바뀌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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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아진 며느리, 아산 지므레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갈산리에는 지므레라 불리는 마을이 있어요. 옛날 이 마을에 살던 며느리는 매사에 트집을 잡는 시어머니 때문에 몹시 힘들어했대요. 견디다 못한 며느리가 산에 올라 시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해 달라고 빌자, 산신령이 나타나 특별한 흰 가루를 건네주며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에 넣어 드리라고 했어요. 며느리가 정성껏 음식을 지어 올리는 동안 시어머니의 마음도 차츰 누그러져 두 사람 사이가 부쩍 좋아졌대요. 나중에 산신령은 그 가루가 사실 몸에 좋은 산삼 가루였다고 알려 주었고, 사람들은 김씨 집안에 좋은 일이 생겼다 하여 이 마을을 김호레라 불렀는데, 세월이 지나 지므레가 되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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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빤지 다리로 물난리를 막은 마을, 아산 너더리
충청남도 아산시 용화동에는 너더리라 불리는 마을이 있어요. 이 마을 앞에는 큰 개울이 흘렀는데, 장마철마다 물이 넘쳐 마을에 큰 피해를 주었대요. 그 무렵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꽃분이라는 아이는 산길에서 신비한 도령을 만나 파란 주머니를 건네받았는데, 그것으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었어요. 도령은 개울 가운데에 널빤지로 다리를 놓으면 물난리를 막을 수 있다고도 알려 주었지요. 꽃분이가 이 이야기를 원님에게 전하고 다리를 놓자 정말로 그 뒤로는 물난리가 나지 않았대요. 사람들은 널빤지로 다리를 놓았다 하여 이 마을을 널다리, 오늘날의 너더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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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인 자로 자랑한 마을, 아산 고육대골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에는 고육대골이라 불리는 갈티마을이 있어요. 옛날 백성들의 삶이 궁금했던 어진 임금이 평민 옷을 입고 몰래 이 마을을 찾았대요. 허름한 초가집에 들른 임금이 마을의 자랑거리를 묻자, 집주인 고씨는 항아리 속에서 참을 인 자를 쓴 종이를 잔뜩 꺼내 보여 주었어요. 마을 사람들끼리 다툴 일이 생기면 참을 인 자를 쓰며 마음을 다스려 왔다는 것이었지요. 그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크게 감탄하며 궁궐로 돌아가 갈티마을 사람들에게 후한 상을 내렸대요. 그 뒤로 사람들은 임금에게 상을 받은 고씨 마을이라 하여 이곳을 고육대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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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위해 제사를 지낸 마을, 아산 뱀밭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에는 뱀밭이라 불리는 백암리 마을이 있어요. 옛날 이 마을의 한 남편이 집에 들어온 뱀을 발견하고는 삽으로 죽여 산에 묻어 버렸대요. 그런데 그 뒤로 마을 곳곳에 뱀이 점점 늘어나고, 뱀이 지나간 자리와 삽이 닿은 자리마다 농작물이 시들어 갔어요. 마을 사람들은 걱정 끝에 뱀이 나오는 곳을 찾아냈고, 죽은 뱀이 억울하게 한을 품었을 거라 생각해 정성껏 제사를 올려 주었대요. 그러자 신기하게도 뱀이 나타나는 일이 줄어들고 농작물도 다시 잘 자라게 되었어요. 그 후 사람들은 뱀과 뱀풀이 많았던 이 땅을 뱀밭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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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를 물리치고 자손이 번성한 마을, 아산 다실기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군덕리에는 다실기라 불리는 마을이 있어요. 옛날 이 마을에는 자식이 없어 걱정하는 부부들이 유난히 많았대요. 최생원 부부도 오랫동안 자식을 얻지 못해 부처님께 매일 기도를 올렸는데, 어느 날 지나가던 스님이 집터에 있는 천 년 묵은 지네 때문에 마을에 자식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집을 헐고 땅을 파서 지네를 잡아낸 뒤 정성껏 태워 없애자, 그 후로 마을 여기저기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대요. 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듯 자손이 번성한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이 마을을 다실기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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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얻고 바다를 잃은 마을, 소금쟁이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동암리에는 소금쟁이라 불리는 곳이 있어요. 지금은 논농사를 짓는 땅이지만,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였고 마을 사람들은 소금을 만들어 팔며 살았대요. 이 마을에는 큰 부자가 살았는데, 아들이 없어 늘 마음이 아팠대요. 어느 날 지나가던 노승에게서 금마산에 올라 바다가 가라앉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부자는 매일 산에 올라 정성껏 기도했고, 몇 해 뒤 정말 아들을 얻었대요. 그런데 그 뒤로 마을의 바닷물이 점점 줄어들더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소금 장수들도 마을을 떠났대요. 사람들은 소금 장수들이 살던 곳을 그리워하며 이곳을 '소금쟁이'라 부른다고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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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이 내려준 자리, 능미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 법곡동에는 능미라는 마을이 있어요. 옛날 강설봉이라는 정승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는데, 마침 그날 임금이 강정승을 궁궐로 부른 일이 있었대요. 강정승이 상을 당한 채 입궐하자 임금은 이를 알고 크게 놀라, 자신이 온양에 마련해 둔 자리를 강정승에게 내려 주었어요. 강정승은 그 자리로 내려와 고을 원님에게 임금이 내려준 문서를 보여 주고, 그곳에 아내를 모셨대요. 마을 사람들은 이 무덤을 '강경묘'라 불렀고, 이 무덤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능미'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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