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부산광역시 동구문화유산
영가대

선착장을 만들려고 파낸 흙이, 훗날 나라의 외교 사절이 안전을 비는 신성한 언덕이 됐다면 어떨까요?
② 현재 위치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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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장소
영가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동구 자성로 99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영가대는 1614년 경상도 순찰사 권반이 부산진지성 밖 서쪽 해안에 선착장을 만들면서, 그때 퍼 올린 흙이 쌓여 생긴 작은 언덕 위에 8칸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조성했다. 자신의 고향 안동의 옛 지명 '영가'를 따 이름 붙였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가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해신제를 지내고 배를 띄우던 출발·귀환 지점으로, 조선과 일본 사이 우호의 상징적 장소였다. 1910년경 경부선 철도 부설과 항만 매축 공사로 사라졌고, 지금은 부산진시장 뒤편 철길 옆에 터를 알리는 비석만 남아 있다.
공사 흙더미로 생긴 언덕이 국가 외교 사절의 신성한 출발점이 됐다는 사실을 통해, 우연히 생긴 지형도 사람들의 필요와 의미 부여에 따라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부산진시장 뒤편 철길 옆에 남은 영가대 터 비석
- 선착장 축조 과정에서 흙이 쌓여 언덕이 된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판
- 1607~1811년 12차례 조선통신사 파견 연표
- 1910년경 철도·항만 공사로 사라진 경위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영가대는 부산진지성 밖 서쪽 해안, 선착장 축조 때 나온 흙이 쌓여 생긴 언덕 위에 있었다.
역사와의 연결: 해안에 접한 이 언덕이라는 위치 덕분에 통신사 배가 바로 그 앞바다에서 출항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항해 안전을 비는 해신제 장소이자 출발·귀환 지점으로 쓰였다는 점이 부산일보·국제신문에 명시돼 있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권반
- 관련 사건: 조선통신사 파견(1607~1811)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영가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영가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영가대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영가대은(는) 동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영가대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영가대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