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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부산광역시 강서구근현대 유산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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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 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조용한 어촌 마을 주민 64가구를, 하루아침에 강제로 쫓아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근현대

가덕도 외양포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대한해협 일대의 군사거점을 확보하려 민가 64호를 강제 이주시키고 만든 포진지다. 1905년 5월 7일 일본 군부대가 상륙했고, 군막사·무기창고·우물·수리시설이 갖춰지며 외양포는 '진해만 요새 사령부'의 주둔지, 즉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가 됐다. 지금도 사령관 관사·장교 관사·막사·위병소 등 군용 건물 32개와 우물·창고가 그때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며, 280mm 유탄포 포대터 3곳(각 2문)도 확인된다. 광복 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제한된 덕분에 오히려 원형이 잘 보존됐고, 지금은 국방부 소유 땅에 30여 가구가 임대 형식으로 살고 있다.

개발이 제한된 군사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100년 전 침략의 흔적이 오히려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아픈 역사의 현장이 보존되는 방식이 뜻밖일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사령관 관사·장교 관사·막사·위병소 등 32개 군용 건물
  • 280mm 유탄포 포대터 3곳
  • 일제강점기에 만든 우물·창고 등 수리시설
  • 1904년 강제 이주 이전 원래 어촌 마을의 흔적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외양포는 대한해협을 마주하는 가덕도 해안에 있다.

역사와의 연결: 대한해협 일대를 감시·통제할 수 있는 해안 위치였기 때문에 일본군이 이곳을 대륙 침략의 군사거점(진해만 요새 사령부)으로 선택했다는 점이 부산시 공식 자료에 명시돼 있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사건: 러일전쟁(1904), 진해만 요새 사령부 주둔(1905)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은(는) 강서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