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부산광역시 강서구기념 공간
가덕도 척화비 역사권


가덕도척화비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 이 무서운 경고를 새긴 비석이 전국 수백 곳에 세워졌다면, 그 시대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후기
가덕도 척화비는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물리친 흥선대원군이, 그 기세를 몰아 쇄국 정책을 더욱 굳히고 백성들에게 척사(斥邪)의 결의를 알리기 위해 1871년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경고가 새겨져 있다. 강서구 성북동에서 건축 공사 중 출토돼 인근 선창마을에 세워졌다가, 1995년 12월 천가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져 복원됐다.
전국 수백 곳에 같은 문구의 비석을 세울 만큼 강했던 쇄국 의지를 통해, 두 차례 서양 세력을 물리친 뒤 조선이 문을 더 굳게 닫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단호했는지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천가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 복원된 비석의 실제 모습
- 비문에 새겨진 경고 문구
- 성북동에서 출토된 경위
-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척화비 건립의 인과 관계를 보여주는 연표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흥선대원군
- 관련 사건: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척화비 건립(1871)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가덕도 척화비 역사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가덕도 척화비 역사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가덕도 척화비 역사권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가덕도 척화비 역사권은(는) 강서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이 장소와 관련된 옛날 사람들과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가덕도 척화비 역사권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가덕도 척화비 역사권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