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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부산광역시 남구역사 경관

우암동 소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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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우암동 소막마을 - 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현재 모습
우암동 소막마을 —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2023년 정기조사)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2023년 정기조사)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소가 지내던 막사가, 전쟁 통에는 사람이 사는 집이 되고, 지금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다면 어떨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근현대

일제강점기 일본은 부산 우암동 일대 바다를 매립해 조선의 소를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위생검역소와 소막사 등을 조성했다. 1909년 5개 동으로 처음 지어진 소막사는 이후 19개 동으로 확장돼, 소각장 등을 포함해 건물 40여 동에 한 번에 1,400~1,600두를 수용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시설이 됐다. 해방 후와 한국전쟁 때는 이 소막사가 피난민들의 임시 주거공간으로 쓰였고, 이후 산업화 시기 도시로 몰려든 영세 노동자들의 생활공간이 됐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15호로 등록됐다.

소를 위한 막사로 지어진 건물이 전쟁 피난민의 집이 되고, 이후 노동자들의 삶터가 되어 지금까지 백 년 넘게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의 건물이 시대마다 전혀 다른 사람들의 삶을 품어 올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바다를 매립해 만든 부지라는 지형적 흔적
  • 1909년 5개 동에서 19개 동으로 늘어난 소막사 구조
  • 해방 후·한국전쟁기 피난민 주거지로 쓰인 흔적
  •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노동자 생활공간으로서의 모습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우암동 일대 바다를 매립해 항구 인근에 조성한 부지라는 사실이 공식 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항구와 가까운 매립지라는 입지가 소를 배로 실어 일본으로 반출하는 검역·수송 기능의 핵심 조건이었다는 연결이 자료에 명시돼 있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사건: 소막사 건립(1909), 한국전쟁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우암동 소막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우암동 소막마을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우암동 소막마을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우암동 소막마을은(는) 남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우암동 소막마을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우암동 소막마을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