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부산광역시 사상구역사 경관
괘내마을 옛 생활문화권

'물이 고인 곳'이라는 뜻의 사투리가, 어떻게 지금의 동네 이름(괘법동)이 됐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근현대
괘법동이라는 동명은 '괘내'에서 비롯됐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을 뜻하는 '물이 괸 곳'이 사투리로 '괴내'가 되고, '괴'를 한자로 적으면 '괘(掛)'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1832년 『동래부읍지』에는 사상면에 주례리·괘내리·덕포리·대수리·모라리·장문리·엄광리 6개 리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괘법동은 1914년 동래군 사상면, 1936년 부산부 편입, 1963년 부산진구 사상출장소, 1975년 북부출장소, 1978년 북구 승격을 거쳐 1995년 사상구에 속하게 됐다. 자연마을로는 괘내마을·서괘마을·동괘마을이 있었다.
'물이 고인 곳'이라는 사투리가 한자로 바뀌어 지금까지 동네 이름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통해, 지명 속에 그 땅의 원래 지형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괴내'(물이 고인 곳)에서 '괘(掛)'로 바뀐 한자 표기의 유래
- 1832년 『동래부읍지』에 기록된 사상면 6개 리 목록
- 1914년부터 1995년까지 여러 차례 바뀐 행정구역 소속
- 괘내·서괘·동괘 세 자연마을의 위치 관계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괘내라는 지명은 물이 고여 있던 저지대 지형에서 유래했다.
역사와의 연결: 물이 고이는 지형('괴내')이라는 관찰이 그대로 한자 지명(괘, 掛)으로 정착됐다는 점이 부산시 공식 지명유래 자료에 명시돼 있다.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괘내마을 옛 생활문화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괘내마을 옛 생활문화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괘내마을 옛 생활문화권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괘내마을 옛 생활문화권은(는) 사상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괘내마을 옛 생활문화권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괘내마을 옛 생활문화권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