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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부산광역시 서구역사 경관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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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 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죽은 사람들의 무덤 위에, 살 곳이 없는 사람들이 집을 지었다면 그 집의 계단과 담장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현대

아미동 일대는 1890년대부터 일본인 공동묘지가 조성됐던 곳으로, 1907년 부산항 북빈매축공사로 초량왜관 인근 복병산에 있던 일본인 묘지가 이곳으로 옮겨왔고, 1920년대에는 부산 최초의 근대식 화장장까지 들어서 '谷町(다니마치)'라 불렸다. 1945년 해방으로 일본인들이 서둘러 귀국하면서 수백 기의 무덤 중 일부만 이송되고 무연고 유골은 그대로 남았으며, 방치되던 이 자리에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터를 잡으면서 주거지로 바뀌었다. 오늘날에도 계단이나 담장, 집의 주춧돌과 옹벽 곳곳에 明治·大正·昭和 등 일본 연호가 새겨진 옛 묘지석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비석마을'로 불리며, 2022년 1월 5일 부산시 첫 번째 등록문화재로 등재됐다.

무덤 위에 지어진 마을에서 비석을 계단과 담장, 집의 기초로 다시 쓰며 살아온 사실을 통해, 전쟁으로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어떤 자리라도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계단·담장·주춧돌로 쓰인 옛 일본인 묘지석
  • 明治·大正·昭和 등 일본 연호가 새겨진 비석
  • 1907년 복병산에서 옮겨온 일본인 공동묘지의 역사
  •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자리를 잡으며 형성된 주거지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아미동 일대가 가파른 산비탈이라는 지형 사실과, 그 경사지에 비석이 계단·디딤돌로 쓰였다는 점이 공공 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가파른 경사지라는 지형이 피난민들의 집을 짓는 방식(비석을 계단·주춧돌·옹벽으로 재활용)을 직접 규정했다는 연결이 자료에 명시돼 있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사건: 부산항 북빈매축공사(1907), 한국전쟁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은(는) 서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