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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부산광역시 수영구성곽·산성

수영사적공원·경상좌수영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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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사적공원·경상좌수영성지 - 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낙동강 동쪽부터 경주까지, 남해안 절반 가까이를 지키던 바다 사령부가 있었다면 어디였을까요?

② 현재 위치 살펴보기

지도로 보기

지도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공식 안내자료의 위치예요. 정확한 사건 발생 지점을 뜻하지 않아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출처 보기 ↗

지금의 장소

수영사적공원·경상좌수영성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 (수영동, 수영동 일원)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경상좌수영성지는 조선시대 경상좌도수군절도사(경상좌수사)의 본영이 있던 성터로, 낙동강 동쪽에서 경주에 이르는 바다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 '수영(水營)'이라는 지명 자체가 이 수군 본영(水+營)에서 비롯됐다. 원래 부산포에 있던 본영은 여러 차례 자리를 옮기다 1652년(효종 3) 다시 부산포로 돌아왔고, 1895년(고종 32) 옛 군사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계속 쓰였다. 지금 남은 성은 숙종 때인 1692년 경상좌수사 문희성이 다시 쌓은 것으로, 둘레 약 2,785m·높이 4m에 우물 4곳, 성문 4곳, 수구 4곳을 갖췄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됐고, 2014년 9월 3일 '경상좌수영성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지금은 수영성 남문·25의용단 등을 품은 수영사적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수영'이라는 지금의 동네 이름 자체가 옛 수군 본영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통해, 지명 하나에 조선시대 국방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둘레 약 2,785m에 이르렀던 성의 규모를 보여주는 흔적
  • 1692년 문희성이 다시 쌓은 성벽
  • '수영(水營)'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수군 본영 자리
  • 수영성 남문·25의용단 등 공원 안에 함께 있는 유적들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낙동강 동쪽에서 경주에 이르는 해안을 관할한 수군 본영이라는 입지 사실이 공식 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동남해안을 관할하는 수군 방어 임무가 부산포라는 해안 요충지 입지와 직접 연결되며, 이 기능이 '수영'이라는 지명 자체의 유래로 이어진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문희성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수영사적공원·경상좌수영성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수영사적공원·경상좌수영성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수영사적공원·경상좌수영성지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수영사적공원·경상좌수영성지은(는) 수영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수영사적공원·경상좌수영성지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수영사적공원·경상좌수영성지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