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대교


영도대교 — 영도대교 도개사진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다리 한쪽 끝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번쩍 들어 올려졌다면, 그 밑으로 무엇이 지나갔을까요?
② 현재 위치 살펴보기
지도로 보기
공식 안내자료의 위치예요. 정확한 사건 발생 지점을 뜻하지 않아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출처 보기 ↗
지금의 장소
영도대교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1가 190-1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근현대
영도대교는 부산 최초의 연륙교(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이자 한국 최초의 '단엽식 도개교'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4월 물자수송을 위해 착공해 1934년 완공됐다.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육지 쪽(중앙동) 다리 31.30m를 하루 2~7차례 들어 올렸으며, 1935년 6월 25일부터는 다리를 들고 닫는 시간을 15분으로 줄였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단엽식 도개교로 희소가치가 높으며, 2006년 11월 25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됐다.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며 뿔뿔이 흩어진 피란민들이 다시 만나는 장소로도 유명했다.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 일부를 실제로 들어 올렸다는 사실을 통해,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 하나에도 바닷길을 막지 않으려는 정교한 기술이 담겨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하루 여러 차례 들어 올려졌던 도개(들어 올리는) 장치
- 1935년부터 15분으로 줄어든 개폐 시간
-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단엽식 도개교라는 희소성
- 피란민들의 상봉 장소로 쓰였다는 역사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영도와 육지 사이 바닷길(해협)을 잇는 연륙교이며 이 물길로 배가 다녔다는 사실이 공식 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섬과 육지 사이 뱃길이라는 지형적 조건이 배의 통행을 막지 않기 위한 도개(들어 올리는) 구조라는 독특한 건축 방식으로 직접 연결된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사건: 영도대교 완공(1934), 6·25전쟁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영도대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영도대교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영도대교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영도대교은(는) 영도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영도대교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영도대교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