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 괴산군유교 문화유산
화양서원 유적

명나라 황제 두 사람을 제사 지내던 사당이 유생들의 폐단이 심해 나라에서 없애 버렸다면, 그 사당은 어디에 딸려 있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화양서원은 1695년 송시열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서원에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군사를 보내 준 명나라 신종과 의종을 제사 지내는 만동묘가 딸려 있었는데, 유생들이 모여 폐단이 서원보다 심해지자 흥선대원군이 이를 철폐하고 위패와 편액을 대보단으로 옮겼다. 대원군이 물러난 뒤인 1874년 만동묘는 다시 부활됐다. 서원이 자리한 화양동은 원래 황양목이 많아 '황양동'이라 불렸으나, 송시열이 계곡의 아름다운 아홉 곳에 이름을 붙여 '화양구곡'이라 명명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서원 하나에 딸린 사당이 나라의 정치 문제가 될 만큼 큰 영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통해, 조선 후기 서원과 사당이 단순한 교육·제사 공간을 넘어 정치적 힘까지 지녔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송시열을 기리는 서원 터의 흔적
- 만동묘가 철폐됐다 다시 세워진 역사
- 송시열이 이름 붙인 화양구곡의 아름다운 계곡
- '황양동'에서 '화양동'으로 바뀐 지명의 유래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송시열, 흥선대원군
- 관련 사건: 임진왜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화양서원 유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서원 터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 화양서원 유적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이곳이 예전에 어떻게 쓰였는지 서원 터이나 안내 자료에서 어떤 증거를 찾을 수 있나요?
- 화양서원 유적은(는) 괴산군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화양서원 유적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화양서원 유적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역사 흔적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