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 진천군독립운동 유적
이상설 생가·기념관


진천 이상설 생가 — 진천 이상설 생가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고종의 밀지를 받아 네덜란드까지 건너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호소했던 사람이 있는데, 일제의 방해로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면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근현대
이상설(1870~1917)은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나 1894년 전시 병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한 대한제국의 문신이다. 1907년 고종의 밀지를 받아 이준·이위종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돼, 프랑스어로 '우리 한국이 1884년에 자주 독립국이 된 것은 공인된 사실'이라 호소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 참석 자체를 거부당했다. 이후 일제로부터 궐석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1917년 연해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가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77호로 지정돼 있으며, 1971년 숭모비, 1975년 숭렬사가 세워졌다.
먼 타국까지 가서 독립을 호소했지만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사연을 통해, 나라를 잃은 설움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1907년 헤이그 특사 활동을 알리는 전시 자료
- 이준·이위종과 함께한 활동 기록
- 1971년 세워진 숭모비와 1975년 숭렬사
- 충청북도 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된 생가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이상설, 이준, 이위종
- 관련 사건: 헤이그 특사(1907)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이상설 생가·기념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생가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 이상설 생가·기념관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이곳의 옛 쓰임을 생가이나 안내 자료의 어떤 증거로 설명할 수 있나요?
- 이상설 생가·기념관은(는) 진천군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이상설 생가·기념관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이상설 생가·기념관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역사 흔적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