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 진천군기념 공간
정송강사


시도기념물 진천 정송강사_정측면4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의 유해가 죽은 뒤 진천으로 옮겨졌다면, 왜 하필 이곳으로 옮겨졌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정송강사는 조선의 문신이자 시인 정철(1536~1593)을 모신 사당이다. 정철은 한성부(서울) 종로방 장의동에서 태어나 진천과는 원래 인연이 없었으나, 1665년 그의 유해가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지장산으로 옮겨졌다. 1684년에는 우암 송시열이 글을 짓고 김수흥이 글씨를 써서 문백면 봉죽리 어은부락에 신도비를 세웠으며, 이 신도비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돼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이 죽은 뒤 진천으로 유해가 옮겨지면서 이 지역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됐다는 사실을 통해, 한 인물의 흔적이 그의 고향이 아닌 다른 곳에도 깊이 남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정철의 위패를 모신 사당 건물
- 1665년 이장된 지장산의 묘소
- 송시열이 글을 짓고 김수흥이 쓴 신도비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7호 지정 표지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정철, 송시열, 김수흥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정송강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당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 정송강사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이곳의 옛 쓰임을 사당이나 안내 자료의 어떤 증거로 설명할 수 있나요?
- 정송강사은(는) 진천군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이 장소와 관련된 옛날 사람들과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정송강사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정송강사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역사 흔적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