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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 거창군전통 가옥

동계 정온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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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동계 정온 고택 - 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실제 장소 사진
동계 정온 고택 — 거창 동계 종택(촬영:문화재청)

거창 동계 종택(촬영:문화재청)

출처: 국가유산청 · 공공누리 제1유형

임금이 적에게 항복한 것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신하가, 이후 산속에 숨어 살다 세상을 떠났다면 어떨까요?

② 현재 위치 살펴보기

지도로 보기

지도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공식 안내자료의 위치예요. 정확한 사건 발생 지점을 뜻하지 않아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출처 보기 ↗

지금의 장소

동계 정온 고택

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동1길 13 (강천리)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동계 정온은 선조·광해군·인조 대에 대사간·경상도관찰사·이조참판 등을 지낸 학자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영향을 함께 받은 대유학자로 평가받는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청에 항복하는 치욕을 겪자 이를 견디지 못한 정온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했고, 1638년(인조 16) 고향으로 내려가 덕유산 자락 '모리'라는 곳에 은거하다 1641년 세상을 떠났다. 후손들이 지켜온 그의 옛집은 1820년 다시 지어졌으며 '충신당(忠信堂)'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05호로 등록돼 있다. 1848년 유배에서 풀려난 추사 김정희가 동계 고택을 찾아 '충신당' 현판을 썼다.

임금의 항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신하의 절개가 후대까지 전해져, 유배에서 돌아온 추사 김정희가 직접 찾아와 현판을 써줄 정도로 존경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한 사람의 신념이 시대를 넘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추사 김정희가 쓴 '충신당(忠信堂)' 현판
  • 1820년 다시 지어진 고택의 모습
  • 병자호란 이후 덕유산 '모리'에 은거한 정온의 이야기
  • 국가민속문화재 제205호 지정 안내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정온, 김정희
  • 관련 사건: 병자호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동계 정온 고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동계 정온 고택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동계 정온 고택이(가) 옛날에 어떻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나요?
  • 동계 정온 고택은(는) 거창군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동계 정온 고택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동계 정온 고택을(를) 소개한다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