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 거창군기념 공간
거창사건추모공원

14세 이하 어린이가 절반을 차지했던 희생자 719명을, 국군이 빨치산 토벌을 이유로 학살했다면 그 진실은 어떻게 밝혀졌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현대
거창사건추모공원은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육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가 지리산 일대 빨치산 토벌을 구실로 민간인 719명을 학살한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희생자 중 14세 이하 어린이가 359명으로 절반을 차지했고 61세 이상 노인도 74명이었다. 2월 9일 신원면 덕산리 청연골에서 84명, 2월 10일 대현리 탄량골에서 100명, 2월 11일 과정리 박산골에서 517명이 학살됐다. 국회조사단이 파견되자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 김종원 대령이 국군을 공비로 위장시켜 위협 사격을 가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국회 조사로 전모가 밝혀져 내무·법무·국방 3부 장관이 사임했고 사건 주모자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돼 실형을 선고받았다(이후 특사로 석방됨).
어린이가 희생자의 절반을 차지한 참혹한 사건의 진실을 국회가 직접 조사해 밝혀내고 정부 장관들이 책임지고 물러났다는 사실을 통해, 국가 권력의 잘못을 밝혀내려는 노력이 실제로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청연골·탄량골·박산골 세 학살 현장을 기리는 추모 시설
- 희생자 719명 중 어린이·노인의 비중을 보여주는 기록
- 사건을 은폐하려 한 시도와 국회 조사로 밝혀진 진실
- 책임자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된 이후의 처리 과정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김종원
- 관련 사건: 거창 양민 학살사건(1951)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거창사건추모공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거창사건추모공원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거창사건추모공원이(가) 옛날에 어떻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나요?
- 거창사건추모공원은(는) 거창군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이 장소와 관련된 옛날 사람들과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거창사건추모공원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거창사건추모공원을(를) 소개한다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