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 의령군인물 관련 장소
백산 안희제 생가

곡물과 해산물을 파는 평범한 회사처럼 보였던 상점이, 사실은 임시정부 독립자금의 60%를 지원한 비밀 거점이었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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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장소
백산 안희제 생가
대한민국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168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근현대
백산 안희제(1885~1943)의 생가는 안채·사랑채 2동으로 이뤄진 조선 후기 민가 건축 양식을 보여주며,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193호로 지정됐다. 안희제는 1907년 창남학교, 1908년 의신학교를 창설해 신학문 보급에 힘썼고, 27세에 만주에서 대동청년단을 조직한 뒤 소련으로 망명해 독립순보를 발행했다. 1914년 무렵 부산으로 돌아와 고향 의령의 소유 농지 2,000두락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이유석·추한식 등과 함께 백산상회를 세웠다. 백산상회는 겉으로는 곡물·해산물·면포를 파는 회사였지만 실제로는 독립운동의 국내 연락 거점으로,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의 60% 이상을 지원했다.
고향의 논밭 2,000두락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세운 회사가 겉모습과 달리 임시정부 자금의 60% 이상을 대는 비밀 거점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독립운동이 총과 칼만이 아니라 치밀하게 위장된 경제 활동으로도 이뤄졌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안채·사랑채로 이뤄진 조선 후기 민가 양식의 생가
- 고향 농지 2,000두락을 판 자금으로 세운 백산상회
- 곡물·해산물 판매로 위장한 독립운동 연락 거점
- 상하이 임시정부에 지원된 독립자금 60% 이상이라는 규모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안희제, 이유석, 추한식
- 관련 사건: 백산상회 설립(1914)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백산 안희제 생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백산 안희제 생가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백산 안희제 생가이(가) 옛날에 어떻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나요?
- 백산 안희제 생가은(는) 의령군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백산 안희제 생가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백산 안희제 생가을(를) 소개한다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