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 인천광역시 부평구역사 경관
애스컴시티·부영공원 역사권

'조병창'이라는 두 글자가 없었다면, 부평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현대
1939년 조성돼 1941년 5월 5일 문을 연 인천육군조병창은 한반도 안에서 유일했던 병기창이다. 1945년 9월 8일 미군 제24군단이 이 부지를 접수하면서 부평 미군 주둔이 시작됐고, 그해 말 제24군단이 구역을 캠프마켓·캠프그랜트·캠프타일러·캠프해리스·캠프하이예스로 나눠 이름 붙이고 제24지원사령부를 두면서, 주민들은 이 부대의 머리글자를 따 일대를 'ASCOM 시티'라 불렀다. 1962년 기준 이곳에서 일한 한국인은 8,000여 명, 월급 총액은 약 3,000만 원에 달했다. 1968~1971년 여러 부대가 해체·이전됐고, 2019년 12월 11일 다른 기지 3곳과 함께 정식 반환됐다.
미군기지에서 일한 한국인 노동자가 8,000명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통해, 냉전 시기 미군기지가 지역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할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캠프마켓·캠프그랜트 등 5개 구역으로 나뉘었던 옛 기지 배치도
- 1962년 8,000여 명이 일했다는 고용 규모를 보여주는 자료
- 1968~1971년 부대 해체·이전 연표
- 2019년 반환 이후 부영공원 등으로 바뀐 현재 모습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사건: 인천육군조병창 개창(1941), 미군 부평 주둔(1945), 부평 미군기지 반환(2019)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애스컴시티·부영공원 역사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애스컴시티·부영공원 역사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애스컴시티·부영공원 역사권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애스컴시티·부영공원 역사권은(는) 부평구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애스컴시티·부영공원 역사권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애스컴시티·부영공원 역사권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