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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 인천광역시 계양구성곽·산성

계양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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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계양산성 - 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계속 쓰인 성이, 왜 한강 하구 쪽 산봉우리를 골라 지어졌을까요?

② 현재 위치 살펴보기

지도로 보기

지도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공식 안내자료의 위치예요. 정확한 사건 발생 지점을 뜻하지 않아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출처 보기 ↗

지금의 장소

계양산성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산 10-1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고대

계양산성(사적 제556호)은 인천 계양구 계양산 동쪽 능선, 해발 202m 봉우리를 둘러 쌓은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둘레는 1,184m다. 삼국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강 유역의 교두보 성곽으로,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돼 오랜 축성 기술의 변천을 보여주는 학술 가치가 크다. 조선시대에는 '고산성'으로도 불렸다. 1992년 인천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된 뒤 2003년부터 발굴조사가 시작돼 2008년 보고서가 나왔고, 2020년 5월 22일 국가 사적으로 승격됐다. 2021년부터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며, 2020년 개관한 계양산성박물관이 유물을 전시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1,00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쓰인 성이라는 사실을 통해,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은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해발 202m 봉우리를 둘러싼 테뫼식 석축 구조
  • 2021년부터 진행 중인 복원 현장
  • 삼국시대~조선시대에 걸친 축성 기술 변화를 보여주는 발굴 성과
  • 계양산성박물관에 전시된 출토 유물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계양산 동쪽 능선, 해발 202m 봉우리를 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역사와의 연결: 한강 유역을 지키는 교두보로서 높은 봉우리라는 지형이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이 자리에 성을 쌓았다는 점이 국가유산포털·문화재TV 서술로 확인된다.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계양산성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계양산성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계양산성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계양산성은(는) 계양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계양산성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계양산성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