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 인천광역시 연수구역사 경관
백제사신길·능허대 교류역사권


능허대 터 — 능허대지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육지 길이 막힌 나라가 외교를 이어가려면, 결국 바다로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고대
4~5세기 백제는 고구려·신라와 적대 관계에 있어 중국 남조(동진 등)로 가는 육로를 쓸 수 없었다. 이에 지금의 인천 연수구 옥련동 한나루(능허대)에서 배를 띄워 산둥반도의 등주·내주로 이어지는 바닷길로 사신을 보냈다 — 근초고왕 27년(372)부터 웅진 천도(475) 전까지 이어진 이 해로는 백제 대중국 외교의 핵심 통로였다. 이 뱃길로 가기 위해 사신들은 미추홀 지역의 고개(삼호현 등)를 넘어 한나루에 다다랐던 것으로 전한다.
육로가 막혔다고 외교를 포기하지 않고 바닷길이라는 대안을 찾아낸 백제의 선택을 통해, 국가 간 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용적인 해법을 찾으려 했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한나루(능허대)에서 산둥반도로 이어지는 바닷길 지도
- 미추홀구 삼호현 고갯길과 능허대를 잇는 육상 이동 경로
- 4~5세기 백제·고구려·신라·중국 남북조의 국제 정세 지도
- 372~475년 이어진 백제-동진 외교의 주요 기록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인천 해안(한나루)에서 산둥반도로 이어지는 서해 바닷길이 이용됐다.
역사와의 연결: 고구려를 거치는 육로가 막힌 상황에서, 서해를 통해 중국과 직접 연결되는 해로가 있었기에 백제가 외교를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이 명확하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사건: 백제-동진 해상 외교(372~475), 웅진 천도(475)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백제사신길·능허대 교류역사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백제사신길·능허대 교류역사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백제사신길·능허대 교류역사권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백제사신길·능허대 교류역사권은(는) 연수구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백제사신길·능허대 교류역사권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백제사신길·능허대 교류역사권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