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인물 관련 장소
배봉산 사도세자 묘터 역사권역

아버지의 명령으로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세상을 떠난 세자가, 훗날 아들이 왕이 되자 더 좋은 자리로 옮겨졌다면 어떤 사연이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사도세자(1735~1762)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15세부터 대리청정을 시작했으나, 소론을 등용하며 노론과 갈등을 빚었고 정신질환에 시달렸다. 1760년 이후 병이 악화돼 궁인들을 해치는 사건이 이어지자, 1762년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굶어 죽었다. 시신은 경기도 양주군 배봉산(지금의 서울시립대학교 동쪽 언덕)에 안장됐다가, 아들 정조가 즉위한 뒤 지금의 화성시 태안읍(융릉)으로 옮겨졌다.
아버지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세자의 묘가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더 좋은 자리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통해, 정치적으로 비극적인 죽음도 후대 권력에 따라 예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서울시립대학교 동쪽 언덕에 남은 옛 묘터
-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세상을 떠난 비극적 죽음
- 정조 즉위 후 융릉으로 옮겨진 경위
- 노론과의 갈등 속 대리청정 시절의 기록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사도세자, 영조, 정조
- 관련 사건: 사도세자 사망(1762), 융릉 이장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배봉산 사도세자 묘터 역사권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배봉산 사도세자 묘터 역사권역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배봉산 사도세자 묘터 역사권역의 옛 역할을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배봉산 사도세자 묘터 역사권역은(는) 동대문구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배봉산 사도세자 묘터 역사권역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배봉산 사도세자 묘터 역사권역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