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상
金敎爽1889. 1. 15 ~ 1946. 11.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9년 1월 15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중부면(中部面) 탄리(炭里)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사립 중앙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음)12월 서울에서 한진교(韓震敎)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기로 계획하고, 우선 독립에 관한 여러 문서를 인쇄하여 배부하기로 하였다. 1920년 2월 서울 적선동(積善洞)에서 명제세(明濟世)·최승환(崔承煥)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가장 위협적인 일제의 사찰계를 공격할 목적으로 다이너마이트를 철로 만든 용기에 넣어 폭발력을 시험하였다. 그러던 중 명제세가 연통제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잡혀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김일원(金一源)·한진교 등과 함께 항일 문서의 제작과 배포를 계획하고 인쇄 기구를 마련하여, 1920년 (음)4월 경기 광주군 언주군(彦州郡) 청담리(淸潭里) 이재인(李載仁) 집을 인쇄 장소로 정하였다. 자신이 독립 문서를 작성하고 이재인·한진교·홍영전(洪永傳) 등이 인쇄·배부하기로 하였다. 또한, 이들은 대한독립단 중앙본부를 조직하기로 하고 그 이름으로 이미 기초 중인 대한독립단 지방부 시행규령, 대한독립단 경무국 시행규령을 완성하고 각 군에 지부를 설치한 후 중앙본부를 조직하여 지부를 통일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그해 (음)7월까지 ‘대한 독립운동을 위하여 생명과 재산을 걸고 대한독립단 중앙부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맹서함’이라는 서약서 약 1,000매를 비롯하여, 경고문 약 200매·암살단 취지서·대한독립단 취지서·대한독립단 지방부 시행규령 80권·대한독립단 경무국 시행규령 약 340권 등을 인쇄하였다. 그해 6월에는 미국 의원단이 동양 각국을 시찰하는 길에 8월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에 암살단 취지서 약 4,000매와 선고문 2,000여 매를 대한독립군 환영단 본부 명의로 인쇄하여 홍영전(洪永傳)을 통해 암살단 단장 김상옥(金相玉)에게 부탁하여 서울 시내에 뿌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암살단원들이 동대문경찰서에 붙잡히고 김상옥마저 피신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활동 자금의 모집에 고심하던 중 그해 9월 이섬(李暹)을 통해 남만주의 대한독립단에서 국내 지단 설치를 목적으로 파견한 김기한(金起漢)을 소개받았다. 그가 인쇄 자금을 제공하고 대한독립단의 이름으로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이를 거절하고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혔다. 1921년 5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범처벌령 및 출판법 위반죄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7월 15일 항소가 기각되어 징역 2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