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제
金觀濟1886. 6. 8 ~ 1951. 7.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동청년단
- · 의열단
- · 조선건국동맹
- ·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
- · 한국민주당
- · 통일정권촉성비상국민회의
- · 민주주의민족전선
- · 조선민족혁명당
- · 조선인민공화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의열단 제1차 암살파괴계획
- · 조선건국동맹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6년 6월 8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개천면(介川面) 명성리(明星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월강(月岡)이다. 1910년대 경남 김해(金海)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였다가 1924년 대구로 이전하여 약전골목에서 복양당한의원(復陽堂韓醫院)을 운영한 한의사였다. 1909년 안희제(安熙濟)·이원식(李元植)·남형우(南亨祐) 등 80여 명이 국권 회복을 목표로 조직한 비밀결사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때, 조선국권회복단의 단원이며 대동청년단의 모험부장(冒險部長)이던 경남 창원군(昌原郡) 진전면(鎭田面) 출신 변상태(卞相泰)와 함께 경남 지역으로 파견되어 경남 동부 지역의 밀양·부산·김해·마산 등지를 순회하며 만세 시위를 독려하였고, 변상태는 경남 서부 일원을 순회하며 만세 시위를 독려하였다. 1920년 7월 의열단의 ‘제1차 암살파괴계획(第一次暗殺破壞計劃)’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같은 해 3월 상하이(上海)에서 의열단의 김원봉(金元鳳)·곽재기(郭在驥)·이성우(李成宇)가 폭탄 3개를 경남 밀양의 김병환(金鉼煥)에게 밀송하였다는 사실이 경기도경찰부에 탐지되어 폭탄이 압수된 이른바 밀양폭탄의거(密陽爆彈義擧)와 같은 해 5월 이성우가 보낸 폭탄 13개 및 권총 2정이 경남 진영의 강상진의 집 창고에서 압수된 이른바 진영사건(鎭營事件)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관련자 20명이 체포되어 1921년 3월 기소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6월 22일 결심공판에서 12명이 유죄로 판결되어 형을 받았다. 이때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그 후 대구 약전골목에서 복양당한의원을 운영하면서 1938년 대구의생회(大邱醫生會)를 개편하여 경북의생회(慶北醫生會)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복양당한의원은 좌익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좌익 인사가 드나들었다. 1944년 8월 이상훈(李相勳)·정운해(鄭雲海) 등과 함께 여운형(呂運亨)이 조직한 조선건국동맹(朝鮮建國同盟)의 경상북도 책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5년 7월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의 부민관폭파사건(府民館爆破事件)의 여파로 일어난 8월 4일의 조선건국동맹사건(朝鮮建國同盟事件)으로 체포되어 대구형무소 미결감에서 공판을 기다리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 8월 18일 서상일(徐相日) 등이 결성한 경상북도치안유지회(慶尙北道治安維持會)에 대응하여 같은 날 경상북도건국준비위원회(慶尙北道建國準備委員會) 주최로 국민대회(國民大會)를 열었다. 같은 달 22일 출범한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建國準備慶北治安維持會)의 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그해 9월 8일에는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45년 10월 경북지방 군정청 행정고문회의 관선도고문(官選道顧問)으로 정운해(鄭雲海)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46년 2월 통일정권촉성비상국민회의(統一政權促成非常國民會議) 위원, 그해 2월 16일 결성된 민주주의민족전선(民主主義民族戰線)의 중앙위원, 4월 9일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상임위원과 중앙위원 보선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7년 6월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제10차 전당대표대회에서 김원봉 등과 함께 5인 대표로 선출되어 조선인민공화당(朝鮮人民共和黨)으로 당명을 변경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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