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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준서

孔俊瑞

미상 ~ 1908.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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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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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임봉구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출신지와 출생 시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1908년 7월 25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청암면(靑岩面) 상리동(上梨洞, 현 하동군 청암면 상이리(上二里)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에 피살, 순국한 사실만 전하고 있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1907년 광무황제(고종)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내정간섭을 본격화하였다. 특히 1907년 8월에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하고 말았다. 이에 전국 각지의 의병들이 해산 군인과 힘을 합하여 정미의병(丁未義兵)이 일어났다. 경남 하동 지역은 지리산과 인접하여 의병 활동이 활발한 곳 중 하나였다. 실제로 경남 지방에서 의병과 일본군의 교전 횟수 8할 이상이 지리산 일대에서 벌어질 정도였다. 더욱이 하동의 의병은 정미의병기의 대표적 의병인 호남의 고광순(高光洵) 의병부대와 호서의 김동신(金東臣) 의병부대가 ‘지리산 근거지론’을 기반으로 장기적인 항일 전술을 벌인 데 영향을 받았다. 그 중 하동의 대표적 의병부대는 임봉구(任鳳九) 의병부대였다. 임봉구 의병장은 비록 50여 명의 소규모 부대원을 거느렸지만 하동 일대에서 가장 치열하게 일본군과 교전한 의병부대 중 하나였다. 특히 임봉구는 같은 하동 출신의 박매지(朴每之, 박인환(朴仁煥)) 의병장과 1907년 8월부터 지리산 일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1908년부터 하동군 청암면을 중심으로 독자적 의병 활동을 벌였다. 언제부터 임봉구 휘하에서 의병 활동을 벌였는지는 밝히기 어렵다. 다만 하동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임봉구가 근거지로 삼은 청암면 일대는 지리에 밝은 현지인이 아니고서는 효과적인 유격전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암면 일대는 지리산에서 발원한 해발 700미터 이상의 봉우리가 뻗어 내려오는 험준한 산악지대이자 곳곳에 골짜기가 펼쳐져 있어 일본군의 대대적인 수색과 토벌을 피하기에 유리한 곳이었다. 따라서 지리산 일대를 잘 아는 임봉구와 같은 하동 출신의 인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하동에서의 임봉구 의병부대의 활동은 1908년 4월 15일부터 시작되었다. 유격전에 필요한 군수품 마련을 위해 파견된 3명의 부대원이 하동군 적양동면(赤良東面) 동점촌(銅店村, 현 하동군 적량면 서리)에서 일본 군경과 조우하여 교전하였고, 4월 20일에는 하동군 악양면 봉황촌(鳳凰村, 현 하동군 악양면 봉대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4명의 부대원이 체포되기도 하였다. 일본군 하동수비대는 주민을 핍박하고, 검거한 부대원을 잔인하게 고문해 얻어낸 정보를 기반으로 점점 의병들을 압박해왔다. 1908년 7월 25일에는 내횡보면(內橫補面) 토덕동(土德洞, 현 하동군 횡천면 횡천리 일대)에 거주하는 일진회원(一進會員) 장재수(張在洙)를 처단하였다. 이는 일본 군경의 강화되는 수색과 좁혀오는 포위망에 대하여 임봉구 의병이 친일 세력에 보내는 경고의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임봉구 의병부대는 7월에 친일 세력 처단 활동으로 하동군 외횡보면(外橫甫面, 현 양보면)의 일신일어학교(日新日語學校)를 습격해 존재감을 알렸다. 이때 적극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일어학교의 건립은 일본인을 돕는 부일(扶日) 세력과 일진회원 등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일신일어학교가 의병의 목표물이 되었을 것이다. 임봉구 의병부대는 먼저 일본인 교사를 인솔해 온 정우철을 응징해 부일 세력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어서 학교로 진입해 기물을 파괴한 후 교사(校舍)를 불태워 버림으로써 항일 의지를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일본군 하동수비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임봉구 의병부대 수색에 열을 올렸고, 그 결과 임봉구와 그 부대원의 근거지가 발각되고 말았다. 이후 청암면(靑岩面) 상리동(上梨洞) 주막에 은신하고 있다가 임봉구 등과 함께 1908년 7월 25일 일본 순사와 수비병의 급습을 받았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일본군과 교전 중에 탄환을 맞고 전사, 순국하였다. 그동안 호위하던 의병장 임봉구도 교전 끝에 체포되어 하동주재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7월 27일 순국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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