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용
金匡溶1908. 6. 12 ~ 1979. 10.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성진회
- ·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8년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본양면(本良面) 동림리(東林里)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약칭 광주고보)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6년에 광주 지역 학생들이 조직한 사회과학 연구 모임에 참여하였다. 이 모임의 결성은 9월 광주고보의 왕재일(王在一)·장재성(張載性)과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의 박인생(朴仁生)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2개월 만에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학생 10여 명이 가담하였다. 11월 3일경 최규창(崔圭昌)의 하숙집에서 광주고보와 광주농업학교 학생 16명이 사회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비밀결사 조직을 논의할 때 참여하였으며, 당일 회의 결과 결성된 성진회(醒進會)에 가입하였다. 당시 회원은 광주고보생 왕재일·장재성·최규창·정우채(鄭瑀采)·임주홍(林周弘)·국순엽(鞠淳葉)·안종익(安鍾翊)·최용호(崔鎔鎬)·김창주(金昌柱)와 광주농업학교생 정남균(鄭南均)·정동수(鄭東秀)·문승수(文升洙)·정종석(鄭鍾奭)·김한필(金漢苾)·박인생 등이었다. 성진회는 “사회과학 연구의 정진, 비밀 엄수, 동지의 획득” 등을 결의하고 임원으로 총무 왕재일, 서기 박인생, 회계 장재성을 선임하였다. 이들은 매월 첫째·셋째 토요일에 회합하여 사회과학을 연구하였다. 성진회는 광주 지역 최초의 학생운동 조직으로 1926년 6·10만세운동 이후 학생운동 조직이 서울의 공개 조직에서 전국적인 비밀결사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결성되었으며, 시기적으로도 매우 앞선 것이었다. 그러나 성진회는 기밀 누설의 염려로 1927년 3월경 정남균의 하숙집에서 자진 해산하였다. 비록 성진회는 해산하였지만 재학 중인 성진회원들을 중심으로 각 중등학교에서 개별적인 연구 모임이 지속되었다. 성진회원들은 같은 해 3월 광주청년회(光州靑年會) 회원 강해석(姜海錫)과 장석천(張錫天)의 주선으로 모임을 갖고 사회과학 연구에 힘쓸 것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임주홍·최규창 등 광주고보 재학생들과 함께 후배들을 규합하여 사회과학 연구 모임을 지속하였다. 1928년 2월에는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의 광주 지역 야체이카원인 강해석·지용수(池龍洙)의 주선으로 광주고보·광주농업학교·전남사범학교 연구 모임의 주도 학생들이 회합하여 향후 계획을 논의하였다. 5학년생으로 졸업을 앞둔 시점에 임주홍·최규창과 함께 광주고보를 대표하여 모임에 참석하였고, 연구 모임의 지속 방안을 협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후계자를 선정하여 재학생을 지도하도록 하고, 후계자는 학생 규합과 사회과학 연구에 힘쓸 것 등을 결정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성진회의 해산에도 불구하고 광주고보에는 사회과학 연구 모임이 지속되어 1929년 독서회 중앙부와 광주고보 독서회의 결성을 볼 수 있었다. 광주고보 졸업 후 1929년 11월 일어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연루·체포되어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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