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용
金伯龍1885 ~ 1909. 5. 29
관련 단체
- · 공태원 의진(공태원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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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6) 본관과 출생 연월일은 자세하지 않다. 다만 1908년 당시 강릉경찰서 분서장(分署長)이 경무국장(警務局長) 마쓰이 시게루(松井茂)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경상도(慶尙道) 사람’이라고 하였다. 황해도 경찰부장의 보고에는 고주서(高周西)의 부하로 25세, 마군동(馬群洞)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주민으로, 나이는 43세이며, 부하 70여 명을 이끌고 있다는 『폭도사편집자료』의 기록도 있다. 1905년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과 1907년 광무황제(고종)의 강제 퇴위 및 한국군의 강제해산 등으로 국권이 매우 위태로워지자 이를 개탄하며, 1908년 황해의 공태원(孔泰元) 의진(義陳)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공태원 의진은 1907년 8월부터 40~50명의 의병을 이끌고 황해 평산(平山)·해주(海州)·연안(延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때 육군 보병 출신 연기우(延基羽) 및 차두환(車斗煥) 의진과 연합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강원도 인제(麟蹄)·홍천(洪川) 등지에서도 활동하였다. 1908년 5월 2일 추흠돌(秋欠乭)을 의병으로 참여시켜 군수품을 운반하게 하였다. 또 같은 해 5월 11일 화승총으로 무장한 부하 15명을 이끌고 강릉(江陵)으로 들어가 정동면(丁洞面) 오죽헌리(烏竹軒里)에 사는 이임득(李任得)을 의병에 참가시켜 인제군과 홍천군을 왕래하며 군수품을 운반하게 하였다. 또 고성(高城)과 회양(淮陽) 일대에서는 부하 70여 명을 이끌고 활동하였다. 1909년 5월 29일 일본군 연안수비대(延安守備隊)에 붙잡혀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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