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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원

金德元

1876. 11. 26 ~ 1946.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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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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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洪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홍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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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876년 11월 26일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내촌면(乃村面) 물걸리(物傑里)에서 태어났다. 김원경(金元經)이라는 이명이 있다. 홍천 지역 천도교 지도자로서 1911년부터는 마굿간을 갖춘 주막집인 마방(馬房)을 경영하였다. 1919년 당시 천도교 장두(狀頭)로 활약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하순 천도교 부장두 전성렬(全性烈)을 비롯하여 전우균(全祐均), 이문순(李文淳), 전영균(全榮均)과 함께 전영균의 다락방에서 모임을 갖고 독립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때 시위에서 사용할 태극기 제작에 직접 나서 대형 태극기 3점을 물감으로 그렸다. 시위 군중이 손에 쥐고 흔들 태극기는 전성렬·전우균·전영균이 300개를 만들었다. 참여 군중 동원은 전성렬이 맡아 3월 27일에 청년 5명을 홍천군 내촌면 호야리(互野里)·문현리(文峴里), 서석면(瑞石面) 수하리(水下里), 화촌면(化村面) 장평리(長坪里)는 물론 인제군 기린면(麒麟面) 상남리(上南里), 내면(內面) 방내리(坊內里) 등에 파견하였다. 물걸리에서는 이장 김홍이의 하인 이오실이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만세 시위 소식을 알렸다. 홍천면 신장대리 장터에서 4월 1일에, 동면(東面)에서 4월 2일에 시위를 감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물걸리의 만세 시위 날짜를 4월 3일로 정하였다. 모이는 장소는 전영균의 한약방 앞으로 정하였다. 그런데 시위를 모의하는데 참여하였던 이장 김홍이가 순찰 나온 헌병보조원에게 4월 3일 시위에 대해 밀고하였다. 이에 정보 수집을 위해 물걸리에 온 헌병보조원 홍재호(洪在浩) 등이 주막에서 시위 모의 내용을 비방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전성렬과 함께 달려가 설득하다가 실패하자 이들을 창고에 가두었다. 4월 3일 아침부터 내촌면·화촌면·서석면·기린면·내면 등 5개면 7개리의 주민들이 전영균의 한약방 앞에 모였다. 천도교 장두로서 전성렬·전영균·이문순 등과 함께 대형 태극기를 게양한 한약방 앞에 도열하여 정오가 되기를 기다렸다. 많은 인파가 모여든 가운데 대형 태극기 3매는 전영균·김자희(金自喜)·이기선(李基先)이 손에 들었다. 양도준(梁道俊)이 징을 울리면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사회는 전성렬이 맡았다. 이때 개회 연설을 맡아 하였고, 독립선언서 낭독은 전우균이, 만세 삼창은 이문순이 담당하였다. 시위대는 양도준의 징소리에 맞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가 있는 도관리(道寬里)를 향하여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때 야트막한 언덕에 몸을 감추고 있던 헌병과 헌병보조원이 시위 행렬을 저지하려고 공포탄을 쏘았다. 전날 밤 창고에서 탈출한 홍재호 등이 이끄는 헌병대였다. 하지만 군중의 만세 소리가 높아지고 해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하여 총격하였다. 선두에 선 시위 대열이 흩어지면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전영균·이순극(李順克)·김자희·이기선·연의진(延義鎭)·전기홍(全基弘)·양도준·이여선(李麗先) 등 8명이 즉사하였다. 함춘선(咸春先)·승만수(承萬壽) 등 20여 명도 부상당하였다. 이때 더 많은 희생자를 내지 않기 위해 시위 중심 대열을 재빠르게 은신시키고 나머지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도록 이끌었다. 저녁에는 시위를 벌인 장소로 돌아와서 사망한 사람과 부상자 처리에 나섰다. 헌병들이 헌병주재소로 돌아간 후에는 시위 군중을 데리고 은장봉 아래 복골 동굴에 은신하였다. 4월 4일부터 헌병주재소는 주동자를 색출하는 데 나섰다. 이때 전성렬·전우균·이문순 등과 함께 피신에 성공하였다. 이에 헌병은 집에 불을 지르고 부인을 연행하였다. 4월 11일에는 내촌면 도관리에서 홍천군 동면 시위 주동자의 한 사람인 민병찬(閔丙讚)과 함께 50여 명의 시위대를 동원하여 횃불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서석면 수하리에 사는 연규환(延圭桓)의 다락방을 은신처로 잡고 피신 생활을 시작하면서 천도교 관련 업무를 지속하고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만주 왕칭현(汪淸縣) 바이초우거우(百草溝)를 왕래하면서 군자금을 제공하였다. 1922년 가을 추석 차례를 모시려고 아들 집을 찾았다가 매복한 순사들에게 붙잡혔다.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 예심부에서 징역 4년 형을 선고받고 춘천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7년 만기출옥한 후 감옥에서 얻은 폐병이 고질병이 되고 시력도 악해져 장님이 되어 고생하다가 1946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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