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경
權在京1888. 8. 9 ~ 1962. 1.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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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8년 8월 9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마중리(馬中里)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일 3·1운동이 발발하고 그 소식은 서산군에도 전해졌다. 일찍이 일제의 지배에 의분을 품고 있던 송재만(宋在萬)·김동운(金東雲)·강태완(姜泰玩)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이에 대호지면 마중리의 연락책으로서 이들의 독립 만세 운동 준비에 참여하였다. 만세 운동 주도 세력은 면서기였던 김동운 등의 조력을 받아 대호지면 면장 명의를 빌어 도로 공사 소집의 명목으로 민중을 모을 것을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4일에 계획대로 수백 명의 민중이 면사무소에 집결하자 독립 만세 운동의 진의와 취지를 밝히며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다수의 대중이 응하자 천의(天宜) 장터로 나아가 더 많은 대중을 규합하고자 하였다. 이때 송재만과 함께 천의 장터로 가서 주재소 앞에서 2회에 걸쳐 독립 만세를 부르고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송산리 인근에 도달하였을 때 순사 2명이 와서 태극기를 빼앗아가려 하자 시장으로 달려가 다시 군중과 합류하여 적극적으로 일제 경찰에 저항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 순사 우에하라(上原)·니노미야(二宮)·다카시마(高島) 등이 군중을 해산하려고 권총을 발사하였다. 이에 분노한 군중과 송재만·남상직(南相直)·권주상(權周相) 등은 우에하라 순사와 한인 순사보를 생포하여 응징하였다. 이때 김길성(金吉成)·한운석(韓雲錫)·남용우(南容祐) 등과 함께 순사주재소로 도망간 순사들을 추격하여 주재소에 투석하는 행위를 주도하였다. 이에 고무된 군중 역시 합류하여 주재소를 파괴하고 나머지 순사들을 잡아들여 응징하였다. 이후 송재만 등과 합류하여 일본인 다지리(田尻)와 그의 가족에게서 엽총 1정·권총 1정·칼 1자루·약간의 총탄 등을 압수하였다. 1919년 4월 5일 일제 경찰의 진압과 검거가 본격화되어 송재만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출판법 위반, 공문서위조행사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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