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일손
孔一孫1887. 10. 17 ~ 1946. 11.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정미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87년 10월 17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사성리(沙城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으로 공일손(孔日孫)으로도 불렸다. 도호의숙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의 유생들은 고종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1919년 2월 말 서울로 상경하였다. 이들은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 1매와 태극기 1매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남주원 등 도호의숙의 유생들은 면장 이인정(李寅正) 및 민재봉(閔載鳳)·강태원(姜泰沅)·송재만(宋在萬)·김동운(金東云) 등 면사무소 직원들과 백남덕(白南德)·홍순국(洪淳國) 등 천도교 세력, 이춘응(李春應)·남상집(南相集)·김홍균(金烘均)·남정혁(南廷爀)·홍월성(洪月星)·한운석(韓雲錫) 등 지역의 유지와 접촉하였다. 이들은 만세 시위에 뜻을 같이하고 만세 운동 계획을 구체화하였다. 주동자들은 정미면(貞美面) 천의리(天宜里) 천의 장터의 장날인 4월 4일에 대대적인 만세 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결정하고,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을 만세 시위 준비의 행동 총책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송재만은 리(里) 단위의 연락망과 청년들을 선봉행동대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면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면사무소의 시설 및 행정력을 이용하여 장터에서 배포할 애국가 및 독립선언서를 준비하고, 면장 명의의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서를 각 마을에 통보하여 많은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었다. 도로 보수공사에 참여하기 위해 연장을 챙겨 4월 4일 이른 아침 면사무소로 갔다. 면사무소 앞에 600여 명의 주민이 모인 가운데, 면장 이인정은 “한국은 이제 독립되었으니, 모두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라”라는 내용으로 연설하였다. 이 연설을 듣고 크게 공감하여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송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를 구성하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크게 외치며 천의 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천의 장터에 도착하자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만세 운동을 목격하고 속속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천의주재소의 일제 순사들을 무력화하고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 시위가 마무리될 무렵 천의 장터로 급파된 당진경찰서 순사들의 발포로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천의주재소로 달려갔다. 행동 총책 송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다른 주민들과 함께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주재소의 집기 등을 파손하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한 뒤,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후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 시위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검거 활동을 전개한 홍성헌병수비대에 체포되어 서산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4월 22일 즉결심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를 이유로 태형 90도(度)의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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