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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81. 2. 2 ~ 1927.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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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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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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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居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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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건동맹단(新建同盟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81년 2월 2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가북면(加北面) 중촌리(中村里) 다전마을에서 태어났다. 자는 대연(大淵)이고, 호는 겸와(謙窩)이다. 부친은 곽정석(郭廷錫)이며,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조카다. 어려서부터 숙부인 곽종석에게 글을 배웠는데, 곽종석이 직접 ‘몽어(蒙語)’라는 책을 만들어 학습시켰다고 한다. 14세 때 부친상을 당한 이후 곽종석이 머물던 화산(花山)으로 가 『소학(小學)』 등을 배웠고, 16세 때 곽종석을 따라 다전마을로 돌아온 후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다. 22세 때인 1903년 곽종석이 비서원승(秘書院丞)으로 임명되어 도보로 상경할 때 배종(陪從)하기도 하였다. 곽종석 곁에서 학문을 익히고 그의 제자, 석학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관심을 두었다. 1905년 이승희(李承熙) 등이 을사늑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릴 때 연명하였다. 1919년에는 곽종석·김창숙(金昌淑)·김복한(金福漢) 등 유생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 중인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글을 보낼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2월 중순 곽종석의 문인 윤충하(尹忠夏)가 곽종석을 방문해 곧 개최될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려고 하니 유림의 대표로 동참해줄 것을 간청하였다. 곽종석이 와병 중이었으므로 대신 서울로 가서 이에 관한 구체적인 일을 협의하였는데, 이때 김황(金榥)이 동행하였다. 2월 하순 서울에 도착해 윤충하·김창숙 등을 만나 곽종석의 뜻을 전하였다. 김창숙은 다시 거창으로 내려가 곽종석에게 청원서 작성을 부탁하도록 하였다. 3월 초 거창으로 돌아와 서울에서의 일을 보고하였는데, 곽종석은 김창숙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곽종석은 장석영(張錫英)과 김황에게 청원서 초고를 작성하도록 한 후 두 사람의 글을 참고하여 청원서를 완성하였다. 이렇게 작성된 원고를 건네받아 깨끗하게 옮겨 적은 후 중국으로 출국하는 김창숙에게 전달하였다. 곽종석 사후인 1925년 그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때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과 이를 기반으로 한 무장투쟁을 준비하던 김창숙이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 군자금을 모집하는 비밀 단체로 신건동맹단(新建同盟團)을 결성한 김창숙은 서울과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이에 곽종석 문집 발간을 위해 모아둔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신건동맹단 단원으로서 거창과 진주 지역 일대를 돌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군자금 모금 활동 중 발각되면서 체포되었으나,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이후 도피 생활을 하다가 1927년 2월 7일 다전마을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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