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열조
具悅祖1884. 2. 12 ~ 1941. 2.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내북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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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4년 2월 12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내북면(內北面) 서지리(西枝里)에서 출생하였다. 내북면의 만세 시위는 4월 8일 세 곳에서 동시다발로 전개되었다. 이미 4월 초부터 인근 옥천(沃川)과 영동(永同)에서 격렬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기 때문에 보은에서도 만세 시위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대전에서 장교 이하 16명의 헌병대를 보은으로 파견하여 만세 시위의 발생을 방지하려고 삼엄한 감시를 펴고 있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같은 동네의 윤정훈(尹鼎勳) 및 산성리(山城里)의 이용기(李龍基)와 협의하여 거사 일을 4월 8일 밤으로 결정하고, 각각 다른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만세 시위를 실행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와 함께 사전 준비로 윤정훈이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로부터 만세 운동에 대한 밀령과 함께 입수한 독립선언문을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4월 8일 밤 서지리에 소재한 산성(山城)으로 김성복(金聖福)·김수려(金秀麗) 등 마을 주민 10여 명을 소집하여, 이들에게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만세 시위를 제안하였다. 이들의 동의를 받아 곧바로 산성 꼭대기에서 2시간여 동안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윤정훈은 무명산(일명 ‘갓빈데산’)에서 윤홍훈(尹洪勳) 등 마을 주민 9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고, 이용기는 산성리의 마을 서쪽 뒤편 구릉 위에서 주민 약 20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연창하는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시위 이후 헌병의 만세 시위 참여자 색출 과정에서 윤정훈·이용기와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6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은 후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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