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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암

權鐵巖

1910. 5. 10 ~ 193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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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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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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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기장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0년 5월 10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기장면(機張面) 동부리(東部里,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산하던 3·1운동과 동래장터 3·1운동의 소식이 기장 일대에 전해지고 있을 때, 서울에서 문사에 다니던 김수룡(金壽龍)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인 기장으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접하고 기장 지역 청년인 김도엽(金度燁)·구수암(具壽巖)·최기복(催基福)·이택규(李澤奎)·박공표(朴孔杓)·오기원(吳基元) 등과 함께 여러 차례 회합을 거쳐 기장면 장날인 4월 5일 오전 11시에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3월 28일 동지들과 함께 기장면사무소의 재무서기인 최창용(崔昌鎔)으로부터 면사무소의 등사기와 원지 14매를 얻어서 옛 기장 장관청(將官廳)에서 독립선언서 400여 매를 등사하였다. 그리고 “조선 독립 만세”, “조선 독립단”이라고 쓴 대형 깃발도 제작하였다. 거사 일인 4월 5일 오전 11시가 되자, 다른 동지들과 함께 선언서와 큰 깃발을 휴대하고 장터로 나가 군중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준 뒤,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하였다. 큰 깃발을 흔들며 시장을 돌자 시위 군중 수는 점차 늘어났고, 이에 놀란 경찰은 헌병대에 지원을 요청하여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기장면 만세 운동은 4월 8일과 10일에 다시 발생하였다. 4월 8일 밤 10시 노동자와 부인들이 주도하는 수백 명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틀 뒤 기장 장날인 10일 오전 9시 기장공립보통학교 교정에서 학생들과 함께 50여 명을 모아놓고 독립 만세를 부른 후 교문을 나가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이 시위 과정에서 경찰에게 붙잡혔고, 같은 해 6개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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