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면숙
金冕淑1868. 8. 2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신남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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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1868년 8월 28일 함경남도 장진군(長津郡) 신남면(新南面) 신중리(新中里)에서 태어났다. 장진군은 함남 서북부의 내륙에 위치한 곳으로 개마고원의 일부이자, 함흥에서 황초령을 넘어야 하는 지리적 요인으로 3·1운동 관련 소식이 비교적 늦게 알려졌다. 그로 인해 장진군의 만세 시위는 발생 빈도가 낮고 일부 지역에 국한되었으나, 투쟁 양상이 치열하여 주민들의 피해가 심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 신남면 고토리(古土里)에서 처음으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모인 200여 명의 시위대는 고토리뿐만 아니라 인근 만풍리(萬豊里)·신중리·신하리(新下里)·중흥리(中興里) 주민들이었다. 김상락(金尙洛)·김정순(金正淳)·이익현(李益鉉)·한영태(韓永泰)·한창순(韓昌順)·한하용(韓夏鏞) 등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가 고토 헌병 주재소로 행진하자, 헌병들은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이에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였으나, 시위대는 주재소 안으로 쇄도하였고, 기세에 눌린 헌병들은 이에 대응하지 못하였다. 전신 시설이 파괴된 상황에서 헌병 보조원 1명이 탈출하여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하갈우리(下碣隅里)에 있던 헌병대에서는 고토리로 헌병들을 급파하여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는 한편, 시위에 참여한 주민을 체포하였다. 이 때 1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붙잡혔다. 1919년 7월 1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지만, 8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재차 상고하였으나,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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