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鳳權

鳳權

1886. 10. 9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鳳權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황해 신계(新溪)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신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6)

관련 사건

  • · 신계군 미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6) 1886년 10월 9일 황해도 신계군(新溪郡) 미수면(美水面) 가무리(歌舞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9일 신계군 미수면 무시랑리(武侍郞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황해도에서 독립선언서 배포와 만세시위 소식을 전달한 인물은 이경섭(李景燮)이었다. 이경섭은 천도교 중앙총부 월보과장(月報課長) 이종일(李鍾一)로부터 독립선언서 1,000여 장을 전달받고, 1919년 3월 1일 전후 수안군(遂安郡)·서흥군(瑞興郡)·해주군(海州郡)·곡산군(谷山郡)·봉산군(鳳山郡) 사리원(沙里院)에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하지만 강원도에 인접한 신계군에는 만세시위 소식과 독립선언서 전달이 늦어져, 그 해 4월 초순이 돼서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4월 7일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신계군(新溪郡) 고면(古面) 무고리(武庫里)에 거주하는 홍종하(洪宗河)를 비롯한 천도교인 4~5인은 만세시위에 사용할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만들었다. 4월 9일 이창진(李昌鎭)·이선진(李鎭善)과 함께 미수면 무시랑리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아침 7시경 천도교인과 개신교인 등 500여 명의 시위대와 더불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행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추천리(楸川里)로 이동하려고 하자, 이 소식을 들은 추천헌병주재소 소장과 부하들이 출동해 시위대를 저지하였다. 이에 밤 10시경 시위대는 일단 해산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를 일제 헌병들이 총을 쏘며 강압적으로 진압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일로 붙잡혀 일자미상일에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19년 6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조선민족으로서 조선의 독립만세를 외친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7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