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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奉順

奉順

1880. 5. 10 ~ 1953.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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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奉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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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청양군 정산면
  • · 운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80년 5월 10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목면(木面) 안심리(安心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성교(李性敎)이다. 1919년 4월 5~6일의 청양군 정산면과 운곡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산면에서는 백곡리(白谷里)의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 유림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홍범섭 등은 4월 5일 오후 준비한 태극기를 서정리(西亭里)의 정산시장에서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이 즉각 출동하여 참여자들에게 해산을 명령하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30여 명을 체포해 헌병분견소로 연행하였다. 같은 마을의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直員)인 권흥규(權興圭) 등과 함께 이 광경을 보고 분노하여 정산시장에 나와 있던 700여 명의 군중과 더불어 헌병분견소로 쫓아가서,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연행된 홍범섭 등의 주도자를 대신하여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이끌던 권흥규가 일제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고,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다음 날인 4월 6일 아침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 및 권흥규의 친·인척 함께 헌병주재소로부터 시신을 인수하여 고인의 자택이 있는 목면 안심리로 향하는 운구에 참여하였다. 운구행렬의 선두에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고 쓴 명정(銘旌)을 앞세운 상여가 각 마을을 지날 때마다 이미 권흥규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온 주민들이 노제를 올리고 통곡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운구행렬은 만세시위대로 전환되었고, 그 규모는 상여가 이동하면서 갈수록 더욱 커졌다. 이에 일제는 정산·청양·공주(公州)의 헌병대를 안심리 방면으로 급파하였다. 그리고 일제 헌병은 운구행렬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해 전날에 이어 권흥규의 조카 최윤안(崔胤安)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날의 운구과정에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에 구금되었다.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1919년 4월 22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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