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範成
範成1890. 11. 2 ~ 1967. 4.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칠곡군 인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90년 11월 2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 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기독교도였다. 그 해 3월 7일 칠곡군 인동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칠곡군 인동면 만세운동은 기독교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대구(大邱)에 소재한 기독교계 계성학교(啓聖學校)의 학생 이영식(李永植)과 이내성(李乃成)이 3월 7일 진평동의 지역 유지인 이상백(李相伯)을 방문하여, 독립선언서 20장을 전달하며 “지금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니, 이곳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평소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이상백은 곧바로 동의하여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이후 이상백은 같은 마을의 기독교계 인사들을 자신의 집으로 소집하여 운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이때 이영래(李榮來) 등과 함께 이상백의 집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하여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상황을 전달받고, 독립운동의 취지에 동의하고 동지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상백 등과 논의하여 만세시위 거사일을 3월 12일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상백과 권용섭(權龍燮)은 주민들에게 배포할 독립선언서를 필사하였고, 이영래 등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만세시위 당일인 3월 12일 마을의 집집마다 찾아가 오후 8시 마을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이라는 소식을 알리고, 이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였다. 또 그동안 필사해 둔 독립선언서를 마을 곳곳에 게시하여 주민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만세시위가 예정된 오후 8시에 동지들과 함께 마을 뒷산으로 향하였다. 만세시위에 공감한 약 300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준 뒤 이상백과 이영식의 지휘에 따라 주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높이 들고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인동면에서 야간에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주도 인물 8명을 체포하여 연행하였다. 이로 인해 이날의 만세시위는 해산되었으나, 평화로운 만세시위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후 계성학교의 학생이었던 김도길(金道吉)이 진평동으로 와서 이곳의 청년 유지인 박풍술(朴風述)·김성윤(金性允)과 함께 새로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의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기로 하고 3월 14일 밤 9시 2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2일 전 만세시위를 전개했던 마을 뒷산의 동일한 장소에서 다시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진평동에서 두차례나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조사·색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7일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그 사이에 모진 조사로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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