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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民植

民植

1875. 11.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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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民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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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개성(開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개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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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1919년 개성군 중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75년 11월 15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중서면(中西面) 곡령리(鵠嶺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같은 해 4월 1일 개성군 중서면 만월대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중서면에서는 1919년 4월 1일 처음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개성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늦은 시기에 만세시위가 시작된 것이었지만, 처음부터 일제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을 각오하고 매우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이 만세시위는 곡령리의 허내삼(許迺三)이 주도하였다. 그는 3월 1일 이래 개성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여 중서면에서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4월 1일의 마을 주민 모임에서 만세시위에 대한 허내삼의 격렬한 발언을 듣고 크게 공감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의하였다. 허내삼의 지휘에 따라 수십 명의 주민들과 함께 시위대열을 형성하고,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개성 시내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날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만월대(滿月臺) 아래를 지나 북본정(北本町) 당교(堂橋)를 지날 즈음 출동한 개성경찰서 소속의 일제 경찰 무리와 대치하였다.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즉각 해산할 것을 경고하였다. 이에 시위대의 일부가 돌을 던지면서 일제 경찰과 무력 충돌하게 되었다. 허내삼·박순성(朴順成)·김대성(金大成) 등과 함께 준비한 곤봉으로 일제 경찰에 대항하였다. 일제 경찰들은 군도를 빼들고 위협하며 진압을 시도하였다. 이때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곤봉으로 일제 경찰에 대항하다가 붙잡혔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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