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海
相海1874. 1. 25 ~ 1951. 2.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1)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성주군 가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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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1) 1874년 1월 25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가천면(伽泉面) 동원동(東元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백사(李百沙)이다. 1919년 3월 27일 성주군 가천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퍼지고 있던 어느 날 밤, 붓을 파는 상인[(筆墨商)] 심성백(沈聖伯)이 집으로 찾아왔다. 밤늦게까지 심성백과 심성백의 이웃 청년 3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거창군(居昌郡)의 만세운동 소식을 들었다. 이때 심성백으로부터 만세운동의 취지를 듣고 자신의 마을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게 되었다. 3월 23일 자택 사랑(舍廊)에서 김명준(金命俊)·정길수(鄭吉洙)·이계환(李桂煥) 등 청년 3명에게 “최근 각 지방에서 대한국 독립만세를 외치는 시위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도 독립을 바라는 조선 사람으로 마땅히 이를 본받아 독립만세를 외쳐야 한다”고 만세운동을 권유하였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김명준은 3월 27일 저녁에 고용인 이태희(李泰熙)의 집 앞마당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전국적인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고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 소식을 들은 창천주재소(倉泉駐在所) 경찰들이 급히 출동하여 이태희 집에 모인 마을주민들을 무력으로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다른 주도 인물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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