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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선

尹台善

1875. 6. 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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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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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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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75년 6월 8일 서울 화동(花洞, 현 종로구 삼청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7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가 일제의 통치를 무력화하고 국내를 임시정부가 직접 통치하고자 연통제(聯通制)를 시행하자 함경북도 지부 조직에 참여하였다. 임시정부는 연통제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전국 각 도에는 감독부, 그 아래 군에는 총감부, 면에는 사감부를 두도록 하였다. 국내 특파원들은 임시정부의 법령과 공문을 퍼트리는 한편 독립전쟁을 대비할 군인 모집과 군수품 조사, 시위 운동 주관, 통신 연락 등의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임시정부의 연통제를 실시하고자 1919년 9월 하순 서울 재동(齋洞)의 취운정(翠雲亭)에서 동지 강대호(姜大浩)·박시목(朴時穆)·송범조(宋範朝)와 회합하였다. 이들은 서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13도 총감부(總監部)와 각 도에 그 지부를 설치한 후, 상하이(上海)에 있는 임시정부와의 연락을 통해 독립운동을 추진하기로 협의하였다. 강택진(姜宅鎭) 등과 13도 총감부에 총무·노동·재무·경무·편집·교통·교섭 등 7개 부서를 설치해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총감부의 총무로 선임되었고, 13도 총감부 함경북도 지부 설립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함북 경성군(鏡城郡)에 함경북도 지부를 설치하는 것에 관해 동지들과 협의하기 위해, 1919년 10월 하순 함북 경성 정재호(鄭在鎬)의 집에서 이상호(李相鎬)·전재일(全在一)·정두현(鄭斗賢) 등과 만났다. 이때 한국의 독립이 명백하다고 주장하며, 애국금을 내어 임시정부를 지원할 것을 호소하였다. 유고(諭告) 문서, 임시정부 13도 총감부 명의의 본부 찬의사(贊義士)와 애국금 수금위원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령서 각 15장을 보이며, 자신이 임시정부와 관련되어 있음을 증명하였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동지들의 동의를 얻어 함북 경성에 13도 총감부 지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지부장에 전재일, 재무부장에 정두현, 서무부장에 박두환(朴斗煥), 경무부장에 전용락(全龍洛)을 임명하였다. 1919년 12월 박관훈(朴寬勳)의 집에서 동지 이상호·전재일·박원혁(朴元赫) 등과 함께 모임을 가졌다. 여기서 1920년 2월 개최되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에 함경북도 출신 의원으로 누구를 파견시킬지 의논하였고, 이때 파견자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12월 중순 일제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었고 의원 파견을 함께 논의했던 동지 이동식(李東植)이 체포되었다. 이어 다른 동지들도 줄줄이 검거되면서, 동지 46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모진 조사를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0년 8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한일합병은 우리 민족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본이 침략주의로 조선을 강탈하여 횡령한 것인데 남의 것을 강탈한 자에게 도로 찾고자 함이 무슨 죄냐”며 항소하였으나, 11월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2년 9월 3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차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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