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虎
相虎1926. 2. 19 ~ 1945. 12.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태극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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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3) 1926년 2월 19일 경상북도 대구부(大邱府) 봉산동(鳳山洞)에서 부친 이권수(李權洙)와 모친 태희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8년 대구 덕산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대구고등소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39년 4월 대구상업학교에 입학하였다.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태극단(太極團)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 이후, 신문과 잡지 등을 탐독하면서 태평양전쟁을 계기로 독립의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하였다. 1942년 5월 중순부터 동료 학생 가운데 대구상업학교 김종우(金鍾宇)·이태원(李兌遠), 대구직업학교 윤삼룡(尹三龍), 경북중학교 최두환(崔斗煥) 등을 규합하였다. 1943년 3월 학교 당국의 편파적인 품행 점수로 인하여 4학년으로 유급되었다. 그 해 4월 중순 대구상업학교 5학년생 김상길(金相吉)·서상교(徐尙敎)와 의기투합하여 조국 독립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상호의 제안으로 조직 명칭은 태극기에 착안하여 태극단(太極團)이라 하였고, 약칭으로 T.K.D.라고 쓰기로 하였다. 태극단의 단장에 선임되었으며, 서상교가 체육국장, 김상길이 관방국장을 맡기로 하였다. 이들은 동지 규합에 나서 같은 학교의 김정진(金正鎭)·김종우(金鍾宇)·이원현(李元鉉), 그리고 이전에 함께 함께 활동한 적이 있던 윤삼룡·이태원·최두환 등을 만나 태극단의 취지를 설명하고 가입시켰다. 이후 20여 명의 동지를 규합하였다. 태극단은 “민족의 이상적인 결속과 능률로써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것을 당면 목표로 하고, 세계 인류의 평화, 자유, 평등의 획득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이를 위해 전국적으로 학교 및 지역별 조직을 완성한 후 국내외에 여론을 환기하는 한편 조직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이들은 먼저 “일제에 조선 독립을 요청하고, 여의치 않으면 폭동을 일으키기로 했으며, 국내 투쟁이 불가능할 경우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정부의 군사 후원을 받아 독립을 쟁취할 것”을 구상하였다. 이들은 인도의 간디, 손문의 삼민주의 관련 서적을 읽으며 민족의식을 함양하고, 학술 연구와 체력 증강에 나섰다. 글라이더와 폭발물 제조 등 군사학 연구에도 정진하였다. 아울러 태평양전쟁의 전황과 일제의 패전, 한국 독립의 가능성을 알리는 전단을 살포할 것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1942년 5월말 태극단 결성식을 준비하던 중 조직이 노출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1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5년, 장기 10년을 받았다.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던 중, 1945년 2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1945년 12월 9일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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