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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德順

德順

1879. 4. 15 ~ 1966.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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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德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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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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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9년 4월 15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내가천리(內加川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이근수(李根洙)·이희룡(李熙龍)·최은식(崔殷植) 등과 함께 원곡면·양성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정오쯤 원곡면 외가천리(外加川里)의 주민들에게 면사무소에서 만세를 부를 예정이니 저녁식사 후 모이라고 전달하였고, 내가천리 주민들에게도 오늘 만세시위가 있으니 나오라고 통보하였다. 4월 1일 오후 8시 원곡면 칠곡리(七谷里)·내가천리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원곡면민 1,000여 명이 외가천리 소재 원곡면사무소 앞에 모여 만세를 외쳤다. 외가천리 면사무소 앞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양성면으로 갈 것이니 모이라고 주도하였다. 이 만세시위에서 홍창섭·이근수·최은식·이희룡 등과 더불어 교대로 시위대를 향해 연설하였다. 이때 “한국은 독립국이 될 것이므로 일본의 정책을 시행하는 관청은 불필요하기 때문에 함께 원곡면·양성면 내의 순사주재소·면사무소·우편소 등을 파괴하고, 일본인을 양성면 내에 거주하게 할 필요가 없으므로 일본인을 양성면에서 구축하자, 돌 또는 몽둥이를 지참하여 활동하라”는 내용을 주장하였다. 4월 1일 오후 10시에는 면장을 끌고 나와 앞세우고 양성면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리고 동항리(東恒里)에 있는 양성주재소로 가서 “순사주재소와 면사무소를 부숴버리자, 주재소로 가서 순사에게 만세를 부르게 하자, 불응하면 때려 죽이겠다”고 하였다. 주재소로 들어가서 기물을 부수기 시작하자 함께 온 사람들도 따라 들어가 의자·탁자·기물 등을 부수고, 그 위에 짚을 올려놓고 불을 질렀다. 또한 주재소의 사무실과 부엌에도 방화하였다. 건물이 불에 타오르자 만세를 불렀다. 한편 양성주재소에는 순사 타카노 헤이조우(高野兵藏)와 순사보 2명이 있었는데, 시위대가 순사를 부르자 이름을 적으려고 하였다. 이때 “내가 만세를 부르라는데 왜 만세를 부르지 않느냐”며 순사에게 태극기를 쥐어주며 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그리고 양성우편소로 이동한 뒤에 사무실로 들어가 장지문·서류·집기·전신기 등을 사무소 앞마당에 끄집어내어 불을 질렀다. 해산하고 돌아가는 길에 원곡면 외가천리에 위치한 원곡면사무소로 가서 숙직실 처마 끝에 방화한 후 투석하였고, 서류와 기물을 전부 소각하였다. 만세시위에서 시위대를 지휘하고 치안방해와 폭행 등으로 검거 대상이 되었으나, 피신해 은신하였다. 하지만 1923년 1월 20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기흥면(器興面) 보라산리(甫羅山里, 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수원지청 검사국으로 인계되었다. 이후 일제로부터 받은 형사처벌내용은 자료의 한계로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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