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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龍成

成

1875 ~ 1920.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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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龍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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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정주(定州)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정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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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족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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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8)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신시면(新市面) 홍암동(紅岩洞)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20년 당시 45세로,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로 이주한 이후 지린성(吉林省) 퉁허현(通河縣) 금두화락(金斗伙洛)에 거주하였다. 독립운동가 이탁(李鐸)의 숙부이다. 1919부터 1920년까지 한족회(韓族會)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탁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만주로 건너갔을 때 또는 1913년 9월 가족들을 전부 지린성 류허현(柳河縣)으로 이주시킬 때 함께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4월 이탁이 김동삼(金東三)·양규열(梁圭烈)·안동원(安東源) 등과 더불어 류허현 삼원포(三源浦)에서 한족회를 결성하였다. 이때 퉁허현 지부에서 한족회 청년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평북독판부(平北督辦府) 보고에 따르면 같은 해 11월 28일 일본군 800명은 퉁허현 쾌당모자(快當帽子)로 들어가서 가옥들을 불사르고 한족회로 추정되는 인사들을 체포하고 사살하였다. 이때 아들과 김세탁(金世鐸)·지하영(池河永)·김창일(金昌一)·이인규(李仁奎) 등 20여 명의 동포와 함께 일본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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