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泰建

泰建

1885. 11. 1 ~ 1958. 5. 1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泰建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선천(宣川)계몽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신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05인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5년 11월 1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선천면 창동(倉洞)에서 태어났다. 소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1907년 4월에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결성된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평북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일제가 조작한 이른바 안악사건(安岳事件)에 연루되었으며, 1911년 9월 신민회 회원 양기탁(梁起鐸)·이동녕(李東寧)·이동휘(李東輝)·윤치호(尹致昊)·전덕기(全德基)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일제는 신민회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암살하려 한 것으로 조작하여 관련인사 160여 명을 일제히 검거하고 안명근(安明根) 등 16명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이를 기회로 일제는 관서(關西) 지방 전체로 탄압을 확대하였으며, 1911년 9월 60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체포하였는데,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2년 9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모살미수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즉각 항소하여 1913년 3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그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되었다. 1925년 11월 평남 안주(安州)에서 관서기자단(關西記者團)의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6년 2월 선천기독교청년회(宣川基督敎靑年會) 이사로 선출되었다. 1932년 10월 선천체육회 주최로 열린 시민대운동회 역원으로 활동하였다. 1934년 4월 선천 신성학교(信聖學校)를 설립하는데 15원을 기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