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成實
成實187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영백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김영백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6) 전라북도 흥덕군(興德郡, 현 고창군) 일남면(一南面) 왕촌리(旺村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0년 당시 40세로, 1871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9년 김영백(金永伯)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이 박탈되는 등 국권을 상실할 위기에 빠지자, 다양한 항일 단체들이 결성되어 이에 대응하였다. 전라남도 영광(靈光)에서는 1906년 기삼연(奇參衍)과 김용구(金容球)를 비롯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을 중심으로 일심계(一心契)가 조직되어 국권회복을 도모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어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대한제국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당하는 등 국권상실이 현실화되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10월 김영백은 장성에서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결성하고, 광주(光州)·고부(古阜)·정읍(井邑)·태인(泰仁)·부안(扶安)·흥덕·고창·순창(淳昌)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1월 말경 김영백은 북이면 상곡리(上谷里)에서 수비대 기병과 교전하였고, 2월 중순 북일면(北一面) 동산리(東山里)에서, 2월 말 흥덕군 세곡리(細谷里)에서, 4월 11일 흥덕군 일동면(一東面) 구수교(九水橋)에서, 4월 중순 고부군 강고리(江古里)에서, 4월 말경 흥덕군 일남면(一南面) 유점리(鍮店里)에서 각각 일본 헌병대와 전투하였다. 이러한 시기인 1909년 (음)3월 8일 김영백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전북 흥덕군과 고부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의병장의 지휘 아래 동료 의병 약 20명과 함께 같은 해 6월 17일까지 고창·흥덕·장성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음)3월 25일에는 군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흥덕군 일남면 해룡리(海龍里)에 거주하고 있는 동한서(董漢西)의 집에 들어가 조 20두를 모집하였다. 이어서 (음)4월 5일에는 동료 의병 김치도(金致道) 외 1명과 함께 같은 목적으로 고부군 소정면(所井面) 등계리(登桂里)에 거주하는 송종서(宋宗西)를 집에서 포박한 뒤 고부군 일동면(一東面) 경월리(頃月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10원을 징수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0년 4월 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4월 23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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