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敎載
敎載1887. 7. 9 ~ 1933. 2. 2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중동중학생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1887년 7월 9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진전면(鎭田面) 오서리(五西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호는 죽헌(竹軒), 자는 경두(敬斗)이다. 경행재에서 서당 교육을 받았다. 이후 경행재가 신식학교인 경행학교로 전환되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2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집 중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난 직후인 그 해 6월 여섯 명의 동지들과 함께 경상도 일대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9월 2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의 명목으로 징역 2년 6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1920년 12월 조직된 진전교육회(鎭田敎育會)의 간사 중 한 명으로 선임되었다. 진전교육회는 창원군 진전면에서 발기되었고 지식의 교환, 체육 발달, 풍속 개정 등을 목적으로 하며, 진전면 내에 거주하는 20세 이상 남성을 대상으로 조직되었다. 1921년 11월 워싱턴회의와 맞물려 서울의 중동학교(中東學校) 학생들과 소통하여 만세운동을 조직하려고 하였다. 명치여관에 투숙하며 강경영(姜慶永)·김규현(金奎鉉) 등의 학생들과 접촉하였다. 태극기 제작 재료를 제공하고 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11월 21일 오후 1시경 중동학교 교문 앞에서 소규모 만세시위를 진행하였고 함께 했던 학생들은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이때 일제 경찰을 피해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1923년 9월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국내로 잠입하여 경남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군자금 모집 중 붙잡혀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후 상하이로 가 1931년 11월 20일 임시정부로부터 경상북도 상주(常駐) 대표에 임명되었다. 이때 상주 대표의 주요 임무는 동지를 모으고, 독립운동을 위한 지방조직을 만들고 정부에 대한 특별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에 국내로 들어와 군자금 모집과 정보 수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모진 고문 및 옥중 생활로 얻은 병으로 인해 감옥에서 풀려난 지 10일 만인 1933년 2월 20일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차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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