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炳求
炳求1891. 9. 16 ~ 1950. 7.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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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9월 16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에서 태어났다. 이치대(李致大)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양성면(陽城面) 일대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양성면 만세시위는 처음에 양상면과 원곡면에서 별도로 전개되었다.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외가천리(外加川里)에 있는 원곡면사무소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면장을 선두로 내세워 횃불을 들고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을 가로지르는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최은식(崔殷植) 등이 번갈아 가며 연설을 하고, 양성면내에 있는 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파괴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이 양성면에 도착할 무렵, 양성면민들이 동항리(東恒里)에 있는 양성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해산하던 중이었다. 이들이 원곡면에서 온 시위대에 결합하면서 시위대는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 주재소 앞에 도착해서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워 버렸다. 다시 양성우편소로 가서 그 곳의 통신용 전주를 파괴하고 우편소의 집기 및 서류 등을 파손하였다. 그리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집을 파괴하였다. 이후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괴하고, 시위 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하였다. 4월 2일 새벽 4시에 원곡면으로 되돌아와서 시위 군중과 함께 원곡면 사무소의 건물을 파괴, 방화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붙잡혔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양성면과 원곡면 만세시위에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 6월(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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