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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洙貞

洙貞

1890. 9. 25 ~ 1934.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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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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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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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함안군 함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0년 9월 25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함안면(咸安面) 대산리(大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이수정(李洙楨)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19일 경남 함안군 함안면 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함안면 만세시위는 고종 장례에 참여한 함안 지역 인사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안지호(安知鎬) 등이 중심으로 함안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거사 일을 함안면 내 장날인 3월 19일로 정한 다음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사전 작업과 지역별 군중 동원과 동지 규합을 위한 연락 등의 역할을 분담하며 비밀리에 준비하였다. 이때 거주지인 대산리 마을의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군중 동원을 맡아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19일 정오 비봉산(飛鳳山)에서 진행된 고천제(告天祭)에 참석하였다. 고천제 참석 후 태평루(太平樓)에서 개최된 독립선언식으로 이동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오후 2시경 수백 명으로 시작된 만세시위의 참여자는 순식간에 3,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함안경찰관주재소·군청·부신지방법원 함안출장소·함안우편국과 우편소 등 식민지배의 상징적 기관들을 두루 이동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들이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자 이들에 맞서 시위대의 선두에서 투석전을 감행하여 유리창 등을 깨트리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 기물과 서류를 파손하고 관계자에게 물리력을 행사하여 제압하였다. 한편 시위군중과 폐쇄한 군청 문을 부수고 들어가 군수 민인호(閔麟鎬)에게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요구하는데 앞장섰다. 출동한 경찰을 제압하는 등 함안면 만세시위가 격화되자 이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제는 오후 5시 40분 마산 중포병대대 병력과 경찰을 급파하여 시위를 진압하고자 하였다. 만세운동은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이후 일제 군경이 만세시위 주도자에 대한 일제 검거 과정에서 다수의 인사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8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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