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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舜永

舜永

1888. 3. 11 ~ 196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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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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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평산(平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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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평산군 안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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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88년 3월 11일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안성면(安城面) 마유리(馬踰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5일 황해도 평산군 안성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천도교의 손병희(孫秉熙)가 평산군 출신의 이동락(李東洛)에게 만세시위 운동을 추진할 것을 제안하자 이동락은 이를 수락하고 곧바로 3월 2일 귀향하였다. 하지만 일제 경찰로부터 거주 제한을 당하게 되자 이동락은 금천군(金川郡)에 거주하는 천도교인 강창선(姜昌善)을 통해서 평산군의 만세시위를 추진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3월 7일과 8일 천도교인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평산면 읍내에서 전개될 수 있었다. 급격히 전개된 시위운동만큼이나 삼엄했던 일제 군경의 경계로 인해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평산군의 만세시위는 3월 말 다시 시작되었다. 3월 28일 세곡면 누천리(漏川里)의 관공서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곧이어 3월 29일 밤부터 30일 새벽 사이 은담리(隱潭里)와 빙고리(氷庫里)의 여러 곳에 ‘대한국독립만세(大韓國獨立萬歲)’라고 쓴 쪽지가 붙었고, 주재소·군 게시장·군청 문 앞·평산보통학교에 태극기 모양의 깃발이 걸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3월 31일 오후 1시경 인산면(麟山面)·상월면(上月面) 주민들과 기독교도인 약 150명이 기린리(麒麟里)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재개하였다. 같은 날 오후 9시 경에는 금안면(金岩面) 한포리(汗浦里)에서 약 600명이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또한 4월 2일 마산면 입암리(立岩里), 4월 3일 오후 3시경 누천장터에서 만세시위가 각각 전개되었다. 그리고 보산면(寶山面)에서는 4월 4~5일 만세시위 및 야간시위가 있었다. 이러한 연속적인 만세운동 중에서 4월 5일 안성면 물개리(物開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대금업에 종사하는 강인리(康仁里)의 신석찬(申錫燦), 농업에 종사하는 마유리(馬踰里)의 신상옹(申相翁) 등과 함께 3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 과정에서 다른 주도자 4명과 함께 물걸헌병주재소 헌병에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일로 1919년 6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상고하며 “세계열강이 민족자결과 속령해방을 외치고, 조선민족대표 33인이 조선독립을 선언했기에 기쁜 마음에 동지들과 함께 조선 독립을 외친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일제의 판결에 저항하였으나,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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