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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永燮

永燮

1870. 5. 1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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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永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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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수안(遂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수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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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수안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870년 5월 12일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율계면(栗界面) 금촌리(金村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 수안읍 시위를 전후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서울에서 제작된 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일 저녁 황해도 수안군 천도교구에 전달되어 배포되었다. 안봉하(安鳳河)·김영만(金永滿)·나찬홍(羅燦洪) 등은 천도교인들을 규합하여 3월 3일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도 세력 대부분이 수안군 헌병분대의 급습으로 체포되었다. 이때 구금을 면한 이영철·홍석정·한청일은 계획한 3월 3일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이때 수안군 천도교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금촌리를 중심으로 천도교인 및 마을 주민들에게 이를 배포하고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전정석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금촌리 주민들에게 회람시키고 만세시위에 참여하고자 마을을 출발하였으나, 도중에 일제 수비대에게 저지당하였다. 그로 인해 3월 3일 만세시위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3월 4일부터 수안군에 일제 관헌이 파견되어 시위 확산을 차단하고 관련자들을 조사하였는데, 이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혐의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상고하면서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해서 조선의 독립 성취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기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면서 무죄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1919년 5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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