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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관

李炳觀

1891. 12. 1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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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이병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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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함흥(咸興)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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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함흥청년회
  • · 함흥우인회
  • · 민립대학기성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3) 1891년 12월 16일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함흥면(咸興面) 동흥리(東興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 함경도의용대(咸鏡道義勇隊)에 가입해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문서를 인쇄하여 반포하기로 한창복(韓昌福)·박원식(朴源軾) 등과 협의하였다. 대한청년단연합회는 1919년 만주에서 각 지방 청년단 대표 17명이 각지의 청년단을 통일하고 통일방침 하에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절대 지지하고, 각 지방에 의용단을 조직해 대규모의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단체였다. 1919년 8월 함흥군 함흥면 하서리(荷西里) 이연백(李鍊白)의 집에서 “상해 임시정부는 열강의 승인을 얻었고 만주지방에 거주하는 조선인은 노력하여 군무에 종사 중”이라고 하며 “함흥 인사도 빨리 각성하여 시위를 일으켜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독립신문』 약 60장을 등사기를 이용해 인쇄하고 배포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21년 4월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22년 1월 2일 풀려났다. 1923년 1월 함경남도 함흥군 대표로 민립대학발기운동에 참여하였다. 이어서 같은 해 3월 민립대학을 설치하기 위해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발기인 1,170명 중 462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민립대학기성발기총회에 발기인으로 참석하였다. 4월 29일 함흥청년회의 혁신을 위해 진행된 함흥청년구락부(咸與靑年俱樂部)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해 5월 민립대학기성회 함흥군지방부 집행위원으로 당선되었다. 5월 22일 실시된 함흥청년회 임시총회에서 선출된 집행위원 31명에 포함되었다. 11월 11일 함흥청년회관에서 진행된 함흥우인회(咸興愚人會) 제1회 총회에 간사로 활동하여 회내규칙에 대해 의결하고 함흥기독청년회에서 주최한 특별기도 강연회에 연사로 참여하였다. 1924년 2월 함흥우인회 회원자격으로 노동정신을 선전하기 위하여 노동자 복장을 하고 함흥역에서 물건을 운송했고 같은 해 4월 12일 함흥청년회 정기총회에 참석하여 청년회관 증축을 위해 기부금을 납부하였다. 그해 5월 천도교종리원에서 함흥노농동맹(咸興勞農同盟)과 함흥우인회가 공동 개최한 기념강연에서 「노동운동변천의 역사적 관찰」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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