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順擧
順擧미상 ~ 1907. 11. 20
관련 단체
- · 김덕호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2)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2)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1907년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일대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해 화약 제조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희생되었다. 강원도 양구는 1896년 유인석(柳麟錫)을 중심으로 결성된 호좌의병부대(湖左義兵)이 활약한 지역이다. 특히 호좌의병부대는 지평(砥平) 출신의 포수 김백선(金伯先)이 중심이 된 포군까지 합세하면서 강력한 군세를 갖추고 한때 충주성을 점령하기도 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의 공세에 밀려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전열을 정비한 호좌의병부대가 서북대행군을 진행하면서 양구 지역을 거쳐 가게 되었다. 이는 당시 양구에서 개별적으로 거의하여 활동하던 의병과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의병의 결성과 활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07년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퇴위당하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당하는 등 국권상실이 현실화되자, 전국에서 항일의병이 일어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다. 강원도에서도 춘천(春川)·원주(原州)·강릉(江陵)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부대가 결성되었으며, 양구에서도 1905년 을사늑약 소식과 함께 보부상 출신인 최도환(崔道煥)이 의병 200여 명과 함께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때 김덕호(金德鎬) 등과 함께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결성하고 항일투쟁을 펼쳤다. 수백명 규모의 의병부대는 양구와 홍천(洪川)을 오가며, 주로 험준한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유격전을 전개하면서 일본군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특히 양구 부근 유목정(楡木亭) 등매동(登梅洞)에 설치된 화약제작소에서 책임자로서 화약 제작 과정을 총괄하였다. 1907년 11월 20일경 동료 의병 수십 명과 함께 양구군 선안리(善安里)에 주둔하고 있을 때, 일본군 보경 제52연대 제12중대 소속 후지에(藤江) 소대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그 결과 동료 김규설(金圭卨)을 비롯한 부장 3명 등 동료 의병 10여 명이 전사하였고,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끝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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