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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金秉權

1878. 6. 16 ~ 195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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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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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흥(始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시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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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수암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78년 6월 16일 경기도 시흥군(始興郡) 북면(北面) 도림리(道林里)에서 김용달(金溶達, 일명 김경수(金麗洙))의 1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경협(敬協), 호는 금남(錦南)이다. 전주 이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1900년 10월 31일 무관학교 제2회 학도로 입학하여 1903년 6월 26일 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03년 7월 3일 육군 보병 참위로 임관해 4년간 복무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시흥군 수암면(秀巖面) 화정리(花井里)와 능곡리(陵谷里) 등지에 ‘내일 30일 수암리의 비립동(碑立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니 그곳에 모이라’라는 격문이 나돌았다. 이에 3월 30일 수암면 내 18개 동리 주민이 3월 30일 오전 10시에 일제히 모여 만세 시위를 하기로 하였고 동민들은 각 마을의 지도자들의 인도 아래 집합 장소인 수암리 비석거리에 모였다. 이때 화정리에서 주민 30명 가량이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수암리 비석거리에 간다고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구장(區長)과 의논하고 운동에 참여하는지를 물었다. 주민들이 의논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구장을 대신해 그들이 폭행을 하지 않도록 지도하기 위하여 만세 시위 행렬에 동참하였다. 비석거리에 도착하자 약 2,000명 가량의 시위 군중이 모여 있어 이에 합류하였다. 순사의 해산 명령에 따르지 않고 태극기를 흔들며 주재소와 보통학교, 면사무소, 공자묘(孔子廟)로 행진하면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와중에 ‘수암주재소와 면사무소를 불태워버리자’라는 강경한 구호도 울려 퍼졌다.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는 순사의 해산 명령이 재차 내려지고 순사들이 사격 준비 태세를 취하자, 시위 군중은 해산하였다. 이 시위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8일 이른바 보안법 제7조, 조선형사령 제42조를 위반한 혐의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아 항소하였다.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 90도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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